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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랩] [흔적으로 좇는 동물 이야기] 멧밭쥐

쥴라이신부 2009. 6. 4. 04:26
동물들은 휴식과 출산 및 육아 또는 무리의 생존을 위해 집(또는 보금자리)을 짓는다. 정교한 집은 벌과 개미로 대표되는 곤충들이 차지하지만 거의 모든 새가 집(둥지)을 잘 만든다. 새들의 둥지는 새끼를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 뿐 어미가 머물며 사는 집은 아니다.

그러나 포유류가 집을 만드는 경우는 더 드물다. 포유류는 땅속에다 굴을 파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며 다른 지점에서 재료를 물고 와 새로운 형태의 보금자리를 꾸미는 유형은 더욱 드물다. 포유류 중 최고의 건축가로는 단연 비버(beaver)를 꼽을 수 있다. 댐을 만들어 주변 경관을 바꾸고 생태계를 재창조하는 비버는 건축가이면서 토목기술자, 수리학전문가, 환경설계가로 불릴 정도다.

▲ 겨울철의 멧밭쥐. 쓰러진 풀더미 사이와 그 아래에 얕은 굴을 파고 생활한다.

우리나라 포유류 중에는 멧돼지와 청설모 그리고 멧밭쥐가 지면 위에 집을 짓는 동물이다. 멧돼지의 경우 유제류(발굽동물) 중 유일하게 집을 짓는다. 비록 엉성하지만 거의 매일 잠자리를 만든다. 청설모는 높은 침엽수의 가지에 집을 만드는데 기본적인 용도는 멧밭쥐와 비슷하다. 청설모의 생활 영역이 주로 나무 위이기 때문이다. 멧밭쥐는 대개 땅에서 1.5m 이하의 초본류 줄기 2~3개를 기둥 삼아 새 둥지 비슷한 집을 만든다.

지면과 토굴을 오가며 생활하는 대개의 설치류 입장에서 볼 때 그 정도의 높이는 다른 세계가 된다. 멧밭쥐는 경쟁이 심한 지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층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멧밭쥐를 보기란 매우 어렵지만 둥지는 흔히 눈에 띈다. 작은 개천가의 덤불이나 강가의 풀숲, 습지나 저수지 부근의 갈대밭 주변, 논과 밭 주변의 덤불에서 볼 수 있다. 둥지의 크기는 야구공 정도이며 타원형을 띤다. 얼핏 보면 새 둥지처럼 생겨 그것을 뒤집어 보다가 쥐가 튀어나와 깜짝 놀라기도 한다.

까치를 포함해 몇 종의 새를 제외하면 대개의 새 둥지는 지붕이 없다. 그러나 멧밭쥐의 둥지는 지붕은 물론 전체가 하나의 구조로 연결돼 있으며 위쪽에 지름 1.5㎝ 정도의 구멍이 나 있다.

생풀로 엮은 멧밭쥐 둥지가 새 둥지가 아니란 건 어릴 때부터 알았다. 친척 형들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둥지 속에 빨간 ‘쥐새끼’가 들어 있는 것을 본 것은 한참 자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 멧밭쥐의 둥지 속은 늘 비어 있었다.


▲ 어미와 새끼. 어미는 연간 1~4회 번식하며 한 배에서 새끼를 2~8마리 낳는다.
멧밭쥐는 자신의 영역 여러 곳에 둥지를 만든다. 이는 예비 둥지인 동시에 가짜 둥지 역할을 한다. 즉 여러 개의 둥지 중 한 곳에 출산함으로써 천적의 눈을 속이는 것이다. 멧밭쥐의 둥지 역시 주된 용도는 새끼를 기르기 위함이다. 즉 갓난 새끼가 둥지를 벗어나는 약 20일까지 머물게 하는 보금자리인 것이다.

멧밭쥐가 굴을 파 새끼를 낳지 않고 풀줄기에 둥지를 짓는 이유는 번식기 동안 초본의 상층부가 생활영역이기 때문이다. 멧밭쥐는 한반도의 설치류 21종 중 크기가 가장 작다. 다 자란 상태에서도 7~14g에 불과하다.

멧밭쥐는 가벼운 만큼 풀줄기와 잎 사이를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등줄쥐와 같은 지상형 설치류는 옥수수나 수수와 같이 굵고 단단한 초본이 아니면 잘 오르지 못한다. 따라서 초본류의 상층부는 멧밭쥐가 독점해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낮 동안 새들이 그 먹이를 함께 취하지만 밤에는 다른 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가벼운 몸과 함께 멧밭쥐의 꼬리는 풀숲 위에서 생활하는 데 없어선 안 되는 기관이다. 멧밭쥐의 꼬리는 물체를 단단히 감을 수 있으며 제5의 발 역할을 한다. 또한 그 꼬리를 풀줄기에 감아 몸을 아래로 늘어뜨릴 수도 있다. 꼬리는 긴 풀줄기나 가지를 탈 때 균형을 잡는 역할도 한다.

▲ 멧밭쥐의 둥지. 수상 가옥 형태로 풀잎을 서로 교차하고 엮어 기둥으로 삼는다. 섬유질이 질긴 풀을 잘게 찢어 엮으며 내부는 부드러운 마른풀로 꾸민다.
멧밭쥐는 주로 밤에 활동하지만 낮에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출산 후 며칠이 지나면 젖을 먹일 때 둥지를 찾을 뿐 낮 동안에는 밖에서 지낸다. 둥지 내부는 비가 새지 않으며 낮 동안에는 보온력이 높아 금방 온도가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멧밭쥐는 강아지풀을 비롯한 거의 모든 벼과 식물의 씨앗을 먹으며 작은 곤충도 잘 먹는다. 가을이면 볍씨나 조·수수·해바라기도 좋아해 지역적으로 해를 주기도 하지만 그 피해는 미미하다.

멧밭쥐는 5~10월에 1~4회 번식을 한다. 그러나 수명이 짧고(야생에서는 2년을 넘기 힘들다) 천적이 많고 겨울 동안 다른 설치류와의 경쟁 등으로 인해 그 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것 같다.

멧밭쥐를 노리는 동물은 여름철 물뱀과 누룩뱀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풀 줄기를 타고 올라 새끼를 노린다.

늦가을이 오면 초본류는 시들어 쓰러진다. 이때부터 멧밭쥐는 풀더미 아래에 얕은 굴을 파고 사는데 족제비와 삵, 황조롱이와 개구리매가 멧밭쥐를 노린다. 그러나 무엇보다 등줄쥐나 시궁쥐 같은 다른 설치류의 공격으로 많은 수가 죽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 스크랩] [흔적으로 좇는 동물 이야기] 사향노루

생태계의 고독한 바위꾼 귀한 약재로 인식돼 멸종 위기에 처해

서제막급(口筮臍莫及) 또는 서제지탄(口筮臍之歎)이란 낯선 격언이 있다. 일이 지난 뒤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후회막급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서제막급은 사향노루에서 나온 말이다. ‘서제’란 배꼽을 씹는다는 뜻이고 여기서 배꼽이란 수컷 사향노루의 ‘사향주머니’를 말한다. 그러면 사향노루는 왜 제 배꼽을 씹게 된 걸까?

옛날 한 사향노루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고 죽게 되자 자신이 사향 때문에 죽게 된 것을 알고 화가 나 배꼽(사향주머니)을 물려고 했지만 입이 닿지 않았다는 데서 나온 이야기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사향노루가 자신의 사향주머니 때문에 죽었는지 알 턱이 없다. 이는 기회(미리 사향주머니를 떼는 것)를 잃으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음을 빗대어 설명한 이야기다.


▲ 환상의 동물-사진은 사향노루 암컷으로 털색은 수컷과 같으나 송곳니가 보이지 않는다. 수컷은 위턱에 두 개의 송곳니가 입술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한의학에서는 3대 동물 약재로 웅담ㆍ녹용ㆍ사향을 꼽는다. 녹용의 경우 사육하는 사슴도 많고 수입산도 많아 이제 귀한 약재에서 제외됐다. 웅담은 녹용에 비해 구하기 힘들지만 이 역시 국내에 1000마리 넘게 사육되고 있어 음성적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사향의 경우 전량 밀수 또는 밀렵에 의존하기 때문에 매우 귀해 일반 한의원에서는 아예 처방전에서 제외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향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 기사회생의 영약으로 취급됐다. 한방에서는 경기ㆍ경련ㆍ심장마비에 처방해왔고 최음제로도 사용했다. 분명히 사향은 그와 같은 질환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별다른 치료법이나 약물이 없었던 시절이다. 첨단 의술과 대체 약물이 흘러넘치는 지금도 사향에 대한 맹신이 지속된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사향을 제외하면 고기는 맛이 없어 러시아의 경우 개먹이로 준다. 또 털은 쉽게 부서지며 가죽도 내구성이 약해 깔개나 각반(스패츠)으로 쓰일 뿐이다.

본래 러시아나 몽골 사람들은 사향노루를 거의 잡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중국ㆍ일본에서 수요가 많은 것을 알고부터 남획이 대폭 늘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스스로 자기 땅의 사향노루를 멸종 직전에 몰아넣었고 인접 국가의 사향노루마저 격감시키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애초에 사향노루가 살지 않았다.

사향노루는 사향의 명성과 달리 수수하게 생긴 동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향주머니가 없었다면 고라니처럼 흔한 야생동물이었을 것이다. 사향주머니는 성숙한 수컷 사향노루에게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생식기와 진짜 배꼽 사이에 있으며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가죽주머니처럼 생겼다. 주머니 속의 선(腺)에서 젤리 형태의 사향을 분비하는데 그것을 말리면 검은색의 분말로 변한다. 수컷의 사향은 암컷을 유인하거나 영역을 주장하는 후각 신호로 이용한다.

▲ (왼)사향노루 박제. 1990년대 초반 강원도의 한 한약방에서 압수한 것이다. (오)밀렵된 사향노루 수컷의 사체. 2000년 4월 검찰에 압수된 것으로 밀수된 사향노루로 판명됐다. 밀렵꾼들은 국내에서 잡았다고 하면 죄가 더 무거워지므로 밀수했다고 우기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정말 밀수로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사향노루의 체형은 고라니와 비슷하지만 흑갈색의 털빛이 누런색의 고라니와 구별된다. 크기는 고라니보다 좀 더 작으며 수컷은 뿔이 없고 긴 송곳니가 돌출돼 있는 게 고라니와 같다. 사향노루는 설악산과 같이 바위가 많은 이른바 골산을 좋아한다. 그러나 지리산과 같은 육산에서도 칠선계곡처럼 바위가 많은 곳에서 서식했다.

아마 사향에 대한 수요가 없었던 오랜 옛날에는 전국 모든 산의 바위지대에 사향노루가 살았을 것이다. 즉 사향노루는 번식이 더디거나 서식환경에 대한 요구조건이 까다로운 동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아직 멸종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현재 사향노루는 휴전선 남쪽 민통선 주변에 적은 수가 서식하고 있는 듯하다. 설악산과 대암산ㆍ오대산의 경우 ‘카더라’식의 소문이 떠도는 수준이다. 사향노루는 크기가 작고 혼자 살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 더욱이 보호색인 털빛으로 인해 바위벼랑에 누워 있으면 배경에 완전히 녹아들어 구별하기 힘들다.

▲ (위)사향노루 서식지인 몽골 흡스걸 바얀산맥. 사향노루는 급경사 바위지대의 산림을 좋아하며 단독생활을 한다. (아래)사향노루의 배설물. 사향노루는 자주 다니는 길목에다 똥자리를 만들며, 그곳에 집중적으로 배설하는 경향이 있다.
사향노루는 어깨보다 허리~엉덩이 부위가 더 높은데 이런 체형은 점프력이 뛰어남을 의미한다. 서식지 내의 바위지대는 휴식처나 도피처 또는 새끼를 숨기는 곳이며, 보다 완만한 산림지대나 초지에서 먹이를 구한다.

만약 풀을 뜯다가 적이 습격하면 바위지대로 재빨리 뛰어 달아난다. 바위지대는 생활권의 중심을 이루며 그 주변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사향노루는 철저히 단독형이다. 그러나 2~3마리가 모여 있을 때도 있는데 이때는 어미와 새끼들이거나 짝짓기(11~12월) 시기에 암수가 모인 일시적인 무리일 뿐이다.

급경사의 바위지대는 먹이가 적어 무리지어 살 수 없기 때문에 한 개체가 제 영역을 확실히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권도 매우 좁으며 직경 1km를 넘는 일이 드물다. 이런 붙박이 습성이 있어 오히려 남획이 아쉽다. 사향노루는 다니는 길이 대체로 일정하며 적에게 쫓겨도 제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따라서 사냥꾼은 길목마다 올가미나 덫을 설치하는 것이다.

사냥꾼의 목적인 사향주머니는 수컷에게만 있지만 올가미와 덫은 암수 새끼를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사냥꾼이 서식지를 눈치 채면 그 지역의 사향노루는 몰살되는 것이다. 사람을 제외해도 야생의 사향노루에게 천적은 많다. 과거에는 표범과 스라소니 그리고 담비가 가장 무서운 천적이었다.

드물지만 새끼는 여우나 검수리ㆍ수리부엉이에게도 잡아먹힌다. 그러나 매해 1~2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 새끼는 다음해 겨울이면 번식이 가능할 만큼 번식률이 높은 편이다. 다만 사람에 의한 사냥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자로 사향노루를 사(麝)로 표기한다. 글자를 풀이하면 사슴 록(鹿)자와 ‘쏘다ㆍ찌르다ㆍ맞히다’라는 뜻의 사(射)자가 합쳐진 것이다. 아마 강한 사향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하다고 느꼈거나 쏘는 듯한 향내가 멀리 퍼지는 사슴이란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사향노루를 보면 총을 쏴(射) 잡을 가치가 있는 사슴(鹿)이란 의미가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사향은 최음제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최음제가 무엇인가? 성욕을 자극시키는 약이 아닌가.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이라면 그 어떤 약이나 향수가 없어도 눈에 띄며 이성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 글·사진 최현명 조경·동물연구가·<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