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화한 새끼는 어미 영양물질 먹고 자라
붉은 민둥산 아래 붉은 흙 사이로 파란 잎들이 뭉게뭉게 솟아난 이랑에서 간신히 할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재회를 한 후 할머니와 동행했다. 할머니께선 할아버지와 밭에서 일을 하시다 잠시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고, 나와 잠시 길이 어긋난 듯했다. 할아버지께 서먹한 인사를 하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들어서는 할머니를 따르려는 순간 “저거 열어 봐라”하고 언제나처럼 ‘툭’ 한마디 하셨다.
“밥 묵었어예.”
“밥 아이다.”
마지못해 검은 천을 들춰 보니 멧비둘기 새끼가 웅크리고 있었다. 기쁜 맘을 억지로 감추며 광주리째 들쳐들고 큰댁으로 먼저 돌아왔다.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달덩이만한 검은 가마솥 뚜껑을 열고 숭늉 속에서 밥알을 꺼내어 새끼에게 주었다. 얼른 맛있게 받아먹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입을 전혀 벌리지 않았다. 쌀을 그냥 주기도 하고 설탕을 물에 타서 주기도 했지만 어떠한 것도 먹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고 학교 다니던 동안 그토록 보고파 했던 할머니를 뒤로 한 채 오로지 멧비둘기 새끼 곁에 머물고 보살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양지 바른 곳에 쌀과 함께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냥 당연히 모른 척하고 큰댁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버지가 되어 두 아이를 기르면서 마음과 표현 사이의 갈등, 표현에 대한 낯설음, 어색함을 느낄 때가 많다. 몰라주는 현실이 속상하기도 하고 말 재주 없는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방학을 기다리셨고, 새를 좋아하는 손자가 오는 날 마침 약에 쓴다며 새끼 비둘기를 들고 가는 지인에게서 비둘기를 얻으셨다. 죽은 새를 보며 맘 아파하던 손자를 보며 안타까워하셨고 새끼 비둘기를 찾아 다시금 산으로, 들로 다니셨다.
난 요즘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과 관련된 책이나 장난감을 사기 위해 인터넷을 자주 뒤진다. “엄마랑 잘래” 하며 껴안은 팔을 애써 풀고 멀어지는 아들을 볼 때면 난 마치 붉은 산 아래 놓인 붉은 밭에 곡괭이를 들고 홀로 놓여진 것만 같다.
-
- ▲ 1. 국내에서 보기 힘든 염주비둘기. 2.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
-
TIP 조류 생태
피존 밀크란?
피존 밀크(Pigeon Milk)라 불리는 ‘크롭 밀크(Crop Milk)’는 크롭(Crop:새들의 모이 주머니)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분비물로 반죽 형태로 되어 있으며 옅은 노란색을 띤다. 포유동물의 젖, 사람의 젖이나 우유보다 고농도의 단백질과 지방을 함유하고 있으며 새끼가 부화하기 며칠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어미는 부화한 새끼에게 게워서 먹이며 암수가 모두 생산이 가능하다. 홍학(flamingo)의 경우도 새끼에게 유사한 형태의 분비물을 먹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지에서 떨어진 멧비둘기 새끼를 잠시 양육할 경우 크롭 밀크 대용으로 사용할 인공먹이를 만들 수 있다. 소금과 방부제나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은 100% 콩 단백질 분말과 물을 반죽하고 여기에 종합비타민제 분말을 약간 섞어서 반죽을 만들어 먹이면 된다. 처음에는 삼키기 좋게 물의 양을 많이 한 후 양과 점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된다.
/ 글·사진 정옥식 박사·한국조류학회 총무이사 nansamat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