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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산새] 멧비둘기

쥴라이신부 2009. 6. 4. 04:24

서구선 사랑의 징표, 한국선 애물단지 새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온기보다, 논두렁 사이에서 제법 자란 쑥보다 세상에 지천인 봄을 비로소 깨닫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새들의 노랫소리일 것이다. “구, 구구. 구구, 구. 구구, 구구.” 푸드득. 오늘 아침도 푸른 새벽부터 울던 비둘기들의 노랫소리가 알람 소리보다 먼저 나를 깨웠다. ‘네놈들이었구나.’ 오늘은 비로소 창을 열고 놈들을 확인했다. 날개를 푸덕이며 치켜든 모양새가 구애 행동에 몰입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다.

멧비둘기의 경우 영명으로는 루포스 터틀 도브(Rufous Turtle Dove) 혹은 오리엔털 터틀 도브(Oriental Turtle Dove)라고 불린다. Turtle Dove는 유럽에 폭넓게 분포하는 종으로 우리의 멧비둘기와는 속명(Streptopelia turtur)은 같지만 종명에서 차이가 난다. 그 외에 스포티드 터틀 도브(Spotted Turtle Dove) 등 터틀 도브(Turtle Dove)로 불리는 비둘기가 여럿 있다.

유럽의 경우 터틀 도브는 ‘사랑의 징표’로 여겨진다. 성경 구절에 인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노래와 시에서 ‘비둘기처럼 다정한’ 혹은 ‘나와 결혼해서 나의 비둘기가 되었다’ ‘나에게 비둘기를 주었다’ 등등 깊은 사랑에 대한 표현을 비둘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농작물 피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우리의 현실과는 많은 문화적 차이가 있다.

넓은 면적에 분포하며 많은 개체수로 살아가는 멧비둘기도 실상을 보면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한 연구 리포트에 의하면 유럽의 경우 최근 20여 년간 터틀 도브의 개체수가 62% 감소했다고 한다. 주 원인은 사냥과 서식지 및 환경적 변화로 알려져 있다. 사냥은 생물종 감소의 직접적 원인이며 높은 강도로 작용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과거 미국에 서식했던 나그네비둘기 혹은 여행비둘기로 알려진 패신저 피존(Passenger Pigeon)의 경우 1800년대에 30억~50억 마리로 추정되던 개체수가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해 100년 만에 멸종하고 말았다.

또 다른 원인은 환경적 변화다. 그 중의 하나가 급격한 농작물 변화다. 우리의 경우도 최근 들어 재배하는 농작물의 종류가 많이 변해왔다. 특히 곡물에 있어 조, 수수, 기장, 밀 등이 사라져 멧비둘기의 먹이량 감소로 이어졌다. 생물종의 감소는 광산의 갱도 내 카나리아(갱도 속에 유독가스가 스며들면 공기 변화에 예민한 카나리아가 거친 퍼덕임을 통해 위험을 알린다)처럼 환경적 알람 기능을 하고 있다. 따라서 비둘기의 급격한 개체수 감소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가 비둘기라고 부르는 새에는 사실 많은 종류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 종에 달한다. 국내에는 목점박이비둘기, 흑비둘기, 염주비둘기, 녹색비둘기, 홍비둘기, 양비둘기, 분홍가슴비둘기, 멧비둘기 등 총 8종이 기록되어 있다.


▲ 1. 멧비둘기가 나무 위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2. 둥지 내 멧비둘기 알. 보통 2개를 낳고 2주 정도 지나면 부화한다. 3. 부화한 멧비둘기 새끼 두 마리. 4 한국에서 가장 널리 분포,서식하는 멧비둘기.

전 세계 300여종, 국내 8종 서식

목점박이비둘기(Spotted Dove)는 국내에서는 2006년 5월에 홍도에서 1회 관찰된 기록이 있는 미조(迷鳥)다. 대체로 인도와 동남아 및 중국 남부지방에 걸쳐 분포하며, 그 외에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에도 인위적으로 도입되어 분포하고 있다. 특히 호주의 경우 1800년대에 도입돼 현재는 호주 전역에 폭넓게 분포하며 텃새로 자리매김했다. 몸은 대체로 가늘고 길며 꼬리는 특징적으로 길다. 몸길이는 대략 30cm 내외이며 몸은 전체적으로 분홍빛을 띤 연갈색이다. 목과 덜미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큰 반점이 뚜렷하게 나 있다.

흑비둘기(Black Wood Pigeon)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일부 도서 지역에 국한돼 분포하는 종으로 서식 개체수는 많지 않다. 몸의 크기는 40cm 정도로 국내에 서식하는 비둘기 중 가장 크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며 몸과 등 주변으로 녹색과 보랏빛 금속광택이 난다. 대체로 상록활엽수림에 서식하며 후박나무, 매가목나무 등의 열매를 주로 먹는다. 제한된 서식 환경과 밀렵 그리고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생존 개체수가 줄고 있으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위기접근종(Near Threatened)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흑비둘기와 흑비둘기 서식지를 각각 천연기념물 215호와 237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염주비줄기(Collared Dove)는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구대륙 전역에 걸쳐 폭넓게 분포하는 종이다. 최근까지 세계적으로 분포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도입된 이후 최근에는 미국 전역에 서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도 1950년대 첫 번식이 관찰된 이후 최근에는 북극권까지 북상해 번식하고 있다. 이처럼 이들이 분포가 쉽게 확산되는 이유는 토착종들과의 경쟁 없이 생존이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의 경우 30여 년 전 야생조류를 잡아서 파는 가게에서 새장 속의 모습을 본 것이 유일하다. 국내에도 도입된 종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텃새인 멧비둘기와의 경쟁에서 뒤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녹색비둘기(White-bellied Green Pigeon)는 국내에 기록된 조류 중 특이하게도 전체적으로 녹색을 띤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새다. 얼굴과 가슴은 연둣빛이며 아랫배는 흰색이다. 몸길이는 대체로 33cm 정도이며, 몸의 윗면에 해당하는 뒷목과 등 그리고 꼬리 윗부분은 녹색이다. 날개의 기부는 갈색이며 끝의 상당 부분은 검다. 중국과 일본, 라오스, 대만, 베트남 등에 분포하며 국내에는 소매물도, 제주도, 독도 등에서 단 몇 차례만 관찰된 미조로 알려져 있다.

홍비둘기(Red-collared Dove)는 22cm의 크기로 국내에 서식하는 비둘기류 중 가장 작다. 머리와 날개 끝, 꼬리를 제외한 몸의 대부분이 적갈색이다. 머리와 허리는 회색이며 꼬리의 양 끝은 흰색이다. 주로 동남아 지역과 중국 남부 등지에 서식하는 종으로 국내에는 서산, 가거도, 흑산도, 홍도, 제주도 등에서 10여 차례 관찰 기록이 있는 미조다.

양비둘기(Hill Pigeon)의 경우 몸길이는 33cm로 집비둘기와 유사하지만 날개에 검은색 두 줄과 흰색의 허리, 꼬리에 나 있는 흰색과 검은색의 굵고 나란한 두 줄 등으로 구분된다. 몸은 전반적으로 회색이며 목 옆으로 하늘색의 금속광택이 난다. 중국, 일본, 한반도, 카자흐스탄, 몽골, 러시아 등에 분포하며 국내에는 남해안 지방에 매우 드물게 서식하는 텃새로 전남 화엄사 경내에도 적은 무리가 서식한다.

분홍가슴비둘기(Stock Pigeon) 의 경우 몸길이는 33cm 정도이며 전체적으로 회색을 띠며 양비둘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날개의 검은색 줄이 짧고 허리는 밝은 회색이다. 무엇보다 가슴에 분홍빛 금속광택이 있는 것으로 큰 차이가 있다. 북유럽 지역과 아시아 서부 지역에 분포하며 국내에는 1998년 문산에서 처음 관찰된 미조이다.

끝으로 비둘기 종류 중 가장 잘 알려진 멧비둘기(Rufous Turtle Dove)의 경우 참새, 까치와 함께 일반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텃새 중 하나일 것이다. 몸길이는 33cm 정도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폭넓게 분포한다. 산림, 농경지, 도심 등 다양한 환경에서 매우 흔하게 서식하며 먹이 또한 다양하다. 몸은 전체적으로 회갈색이며, 등과 날개에는 마치 거북의 등처럼 밝은 색의 테두리를 지닌 검은색 반점이 있다.


▲ 1. 특이하게 몸 전체가 녹색을 띤 녹색비둘기. 2. 홍도에서 1회밖에 관찰된 적이 없는 국내 희귀조 목점박이비둘기. 3. 남해안 지방에 드믈게 서식하는 텃새인 양비둘기.
3월부터 6월 사이, 큰 나무의 가지 사이에 나뭇가지를 이용해 엉성하게 만든 둥지에 2개의 흰색 알을 낳는다. 부화기간은 약 2주이며 부화한 새끼는 어미에게서 ‘크롭 밀크(Crop Milk)’, 일명 피존 밀크(Pigeon Milk)라 불리는 영양물질을 받아먹고 자란다.멧비둘기의 새끼는 이를 받아먹기 쉽도록 부리가 납작하다. 따라서 멧비둘기 새끼를 인위적으로 기를 때 너무 어린 경우 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양육하기 어렵다. 필자의 경우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멧비둘기 새끼를 주운 적이 많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되살려 보내지 못하고,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고 울먹이며 돌아올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한다. 방학을 맞아 늘 그렇듯 시골 큰댁에 갔었다. 집은 비어 있었고 들과 산으로 논과 밭으로 할머니를 찾아다니다 밭에서 괭이질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보게 되었다. 새참을 준비해 가신 듯 이랑의 끝에는 검은 보자기에 덮인 광주리가 놓여 있었다. 얼른 모른 척하고 할머니를 찾아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께선 늘 내겐 아무런 말씀도 없었고 간혹 던지는 말씀이라곤 “조용히 해” “일찍 자” “밥 안 묵고 뭐 하노” 등 한여름 더위도 얼릴 만큼 냉기 서린 말씀뿐이었다. 나에게 늘 화나신 듯한 눈빛이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맘은 할아버지 얼굴의 주름보다 더 짙게 주름이 지어 있었다. 그래서 겸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던 터라 그 순간을 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부화한 새끼는 어미 영양물질 먹고 자라

붉은 민둥산 아래 붉은 흙 사이로 파란 잎들이 뭉게뭉게 솟아난 이랑에서 간신히 할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재회를 한 후 할머니와 동행했다. 할머니께선 할아버지와 밭에서 일을 하시다 잠시 집에 다녀오는 길이었고, 나와 잠시 길이 어긋난 듯했다. 할아버지께 서먹한 인사를 하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들어서는 할머니를 따르려는 순간 “저거 열어 봐라”하고 언제나처럼 ‘툭’ 한마디 하셨다.

“밥 묵었어예.”

“밥 아이다.”

마지못해 검은 천을 들춰 보니 멧비둘기 새끼가 웅크리고 있었다. 기쁜 맘을 억지로 감추며 광주리째 들쳐들고 큰댁으로 먼저 돌아왔다.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달덩이만한 검은 가마솥 뚜껑을 열고 숭늉 속에서 밥알을 꺼내어 새끼에게 주었다. 얼른 맛있게 받아먹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입을 전혀 벌리지 않았다. 쌀을 그냥 주기도 하고 설탕을 물에 타서 주기도 했지만 어떠한 것도 먹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고 학교 다니던 동안 그토록 보고파 했던 할머니를 뒤로 한 채 오로지 멧비둘기 새끼 곁에 머물고 보살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양지 바른 곳에 쌀과 함께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냥 당연히 모른 척하고 큰댁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버지가 되어 두 아이를 기르면서 마음과 표현 사이의 갈등, 표현에 대한 낯설음, 어색함을 느낄 때가 많다. 몰라주는 현실이 속상하기도 하고 말 재주 없는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방학을 기다리셨고, 새를 좋아하는 손자가 오는 날 마침 약에 쓴다며 새끼 비둘기를 들고 가는 지인에게서 비둘기를 얻으셨다. 죽은 새를 보며 맘 아파하던 손자를 보며 안타까워하셨고 새끼 비둘기를 찾아 다시금 산으로, 들로 다니셨다.

난 요즘 아들이 좋아하는 공룡과 관련된 책이나 장난감을 사기 위해 인터넷을 자주 뒤진다. “엄마랑 잘래” 하며 껴안은 팔을 애써 풀고 멀어지는 아들을 볼 때면 난 마치 붉은 산 아래 놓인 붉은 밭에 곡괭이를 들고 홀로 놓여진 것만 같다.


▲ 1. 국내에서 보기 힘든 염주비둘기. 2.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


TIP  조류 생태


피존 밀크란?


피존 밀크(Pigeon Milk)라 불리는 ‘크롭 밀크(Crop Milk)’는 크롭(Crop:새들의 모이 주머니)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분비물로 반죽 형태로 되어 있으며 옅은 노란색을 띤다. 포유동물의 젖, 사람의 젖이나 우유보다 고농도의 단백질과 지방을 함유하고 있으며 새끼가 부화하기 며칠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어미는 부화한 새끼에게 게워서 먹이며 암수가 모두 생산이 가능하다. 홍학(flamingo)의 경우도 새끼에게 유사한 형태의 분비물을 먹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지에서 떨어진 멧비둘기 새끼를 잠시 양육할 경우 크롭 밀크 대용으로 사용할 인공먹이를 만들 수 있다. 소금과 방부제나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은 100% 콩 단백질 분말과 물을 반죽하고 여기에 종합비타민제 분말을 약간 섞어서 반죽을 만들어 먹이면 된다. 처음에는 삼키기 좋게 물의 양을 많이 한 후 양과 점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된다.



/ 글·사진 정옥식 박사·한국조류학회 총무이사 nansamat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