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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일 전투' 끝나자 또 '100일 전투'

쥴라이신부 2009. 10. 4. 10:41

'100일 전투' 돌입…전투에 집착하는 북한의 속사정

 

[주간조선] '150일 전투' 끝나자 또 '100일 전투'…

'전투'에 매달리는 북한 속사정은?

  • 강철환 조선일보 북중전략문제연구소 연구위원 nkch@chosun.com

 

강원 철원군 중부전선 DMZ를 경계로 이질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황금빛 물결로 넘실거리는 DMZ 아래가 철원평야이며 그 너머가 북측의 평강고원이다. photo 북중전략문제연구소 임선우

겉으론 경제회복, 실제 목표는 체제

위협하는 시장경제 없애자는 것


강제동원 내몰리며 식량난 심각,

떼강도 출현… 주민불만 극에 달해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7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북한은 올해를 ‘2012년 강성대국’을 달성하는 결정적인 해로 규정, 지난 4월 20일~9월 19일까지 돌격대식의 증산(增産)운동인 ‘150일 전투’를 벌여왔다. 북한은 150일 전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100일 전투에 돌입했다. 북한은 왜 지속적으로 ‘전투’를 강요하는 것일까?

북한은 대외적으로 “지난 150일간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생활고가 극에 달했으며 당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 일색이다. 150일 전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100일 전투를 벌이는 것은 북한이 세웠던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번 전투의 성과로 전력생산을 증가시킨 것과 김일성 부자 우상지인 백두산 전적지를 새롭게 변모시킨 것을 꼽았다. 경제생산과 전혀 상관없는 우상숭배화 작업을 전투의 성과로 내세웠다는 것은 이번 전투가 실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최근 북한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행동들은 체제 말기에 일어나는 일로 인민들의 자유를 억제하고 수령독재를 장기화하기 위한 강제적 수단이 총동원되는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 내부는 큰 변화를 겪어왔다. 2000년 이후 많은 지역에서 배급이 중단됨에 따라 시장 경제가 북한 사회를 급속하게 잠식해 들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도 각자 능력에 따라 무역상, 보따리장수, 시장 상인 등 다양한 형태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장사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뙈기밭 농사에 의존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도적질로 생계를 꾸려갔다. 황해도 곡창지역처럼 군인들이 탈곡장(脫穀場)을 지키고 있는 곳에서는 아예 밭에서 벼 이삭을 훑어 자루에 담은 뒤 땅속에 묻어 놓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 탈북자는 “올봄 황해도 지역에선 군인들이 쇠 창을 들고 땅을 찔러가며 농민들이 묻어둔 쌀을 찾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고 말했다.

많은 탈북 엘리트들은 북한이 150일 전투를 벌이는 진짜 목적에 대해 ‘시장경제가 북한체제를 잠식하는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이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로 인해 흔들리는 내부를 단속하고 시장을 통해 축적된 개인의 부를 국가의 몫으로 돌리려는 강제적 목적도 있다”고 말한다. 총체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북한정권의 의지와는 반대로 북한 내부는 급속한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마지막 싸움

최근 입국한 한 고위탈북자는 “이번 150일 전투의 표면적 목표는 과거 1970~1980년대 계획경제 수준의 경제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목표는 시장경제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공식적으로 계획경제를 포기한 적이 없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계획경제는 사실상 완전히 붕괴됐다. 국영기업 종업원의 80~90%는 각자 장사를 통해 해당 국영기업에 일정 금액을 바친 뒤 나머지로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북한 고위경제관료 출신 김태산씨는 “과거 북한이 주도했던 여러가지 전투들은 계획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실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계획경제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19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에서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채 북한 내부의 자원만으로는 그 어떤 경제부흥 정책도 실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7월 14일 “북한 유일의 자체 자동차회사인 승리자동차연합 기소가 2012년까지 연산 1만대를 생산 목표로 세웠다”며 “김정일이 이 구상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공장은 현재 가동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북한 주요기업인 ‘김책제철소’나 ‘흥남비료공장’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공장 종업원의 90%가량은 현재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고 있다. 공장에 나오지 않고 장사에 주력하고 있는 종업원을 강제로 출근시키려 하지만 배급을 주지 않기 때문에 종업원이 손을 놓고 놀아도 간부들이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전투기간이란 것이 ‘할 일 없이 기업소에 사람들만 모아놓고 못살게 구는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집단농장·개인농사 모두 망쳐

북한은 올 4월부터 150일 전투를 시작하면서 뙈기밭으로 향하는 모든 북한주민을 강제로 집단농장으로 내몰았다. 데일리NK 등 대북 소식통들도 “북한이 올 봄부터 보안원(경찰)들을 총동원해 주요 도시에서 쏘다니는 사람들을 이유없이 잡아 농장으로 강제동원시켜왔다”고 전했다.

국방위원회는 150일 전투를 시작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의 유례없는 공화국 고립 압살정책에 맞서 식량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외부에서 식량이 나올 데가 없으니 집단농장의 농사에 총력을 다해 올해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북한을 다녀온 한 재중동포는 “농장에 가보니 농민들이 다 손을 놓고 놀고 있다”며 “대부분의 농장에서는 비료가 없어 아예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 뙈기밭 농사는 강제로 못하게 한다”며 “집단농장으로 내몰린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의 도움 없이 자신들이 알아서 살겠다는데 그것을 강제적으로 못하게 하면서, 집단농장으로 내몰아 최후의 생계수단까지 빼앗으려는 당국의 무책임한 행동에 집단 태업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 고위탈북자는 “이번 150일 전투로 농사가 더 망가졌다”고 말했다. 뙈기밭에 나가려는 개인들을 강제로 집단농장에 내몰자 이들이 집단으로 반발해 집단농장과 뙈기밭 농사 모두를 망쳤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남측의 비료 지원까지 끊겨 사람들을 아무리 집단농장으로 동원해도 농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북한의 식량가격도 예년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가을이 오면 식량가격은 대체로 하락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식량가격이 대폭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곳곳 떼강도… 굶주린 군인까지 가세

지난 9월 7일 북한의 경제특구인 함북 나선시의 중국인 무역회사에 떼강도가 나타나 중국인 사업가 5명을 폭행, 사업가들이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당국은 즉시 북한에 범죄자를 체포해 진상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으나 아직 범인은 체포되지 않고 있다.

경제특구는 국가안전보위부의 감시망이 극심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떼강도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북한 내부의 경제 불안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평남 평성, 함남 함흥 등 대도시에서는 제대군인을 중심으로 폭력조직을 결성해 부유층을 습격, 재산을 강탈하는 강력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경을 넘은 한 탈북자는 “최근 북한 내부는 떼강도에 이어 약탈에, 굶주린 군인들까지 가세해 주민 불안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북한 당국의 강제적인 150일 전투 때문에 빚어진 일로, 연말까지 지속되는 100일 전투에까지 주민들이 내몰리고 나면 주민 불만이 극에 달해 체제가 어떻게 변화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