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고단한 인생길을 걷다 보면 탈출구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탈출구라 할 수 있는 자살은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의 생활마저 뒤흔드는 치명적인 행동이다. 특히 배우자의 충격과 상처는 헤아릴 길이 없다. 내 남편의 안녕을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징후들을 소개한다.
극단의 상황에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위기 속에서 자살은 손쉬운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끝남과 동시에 당장의 고통과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나약한 인간에게는 강력한 유혹이다. 최근 수년간 유명 연예인, 정·재계 인사들의 자살이 이어졌고, 이에 영향 받은 사람들이 ‘베르테르 효과’의 실체를 증명하려는 듯 비슷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은 가지 마세요
자살자의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형언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중 총체적으로 가장 큰 고통과 상처를 받는 당사자는 바로 배우자이다. 그 고통에는 자살한 배우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까지 포함돼 있다. 수십 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살면서도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끊임없이 자책한다. 여러 징후들이 있었음에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게 되는 것이다.
자살은 아무리 충동적이라도 평소 여러 징후를 보인다. 자살한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눈에 띄는 행동 유형이 발견되었다. 우선 배우자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일 때 이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농담처럼 자살 의사를 비치거나 우울증 혹은 불안증이나 불면증 등으로 의사를 찾아갈 정도라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끼던 물건을 나눠주고,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친지와 접촉하는 경우도 세심한 관찰을 요한다. 자신의 죽음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도 위험한 신호다.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경우에는 이를 무시하기 십상인데, 이 또한 자살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이미 죽은 가족에 대한 죄의식, 재결합의 표현이 잦은 것도 자살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걸 (돌아가신) 어머니가 본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와 같은 말이 그 예에 속한다.
또 자살을 시도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살률이 5~6배 정도 높다는 보고가 있다. 가족 중에 자살로 사망한 예가 있을 경우에도 영향을 받는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 역시 자살 확률이 높다. 자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갖고 있다.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며 의기소침이 만성화되었거나 식욕, 성욕, 수면욕 등 생물학적 욕구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죄에 대해 벌 받기를 강력히 원하거나 죽음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위험하다.
별거나 이혼, 사별 등의 이유로 홀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배우자나 자녀, 부모 등은 여러 면에서 보호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자살에도 공히 적용된다. 가족과 같은 지지체계가 없는 환경은 자살 위험을 높이는 위험요인이다.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조치
1 미국은 자살 위험자와 경찰 사이에 연계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살 위험자를 도울 가족이나 친지 등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
2 자살은 혼자 있을 때 저지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자살 위험자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하다. 전문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항상 그 곁을 지켜야 한다.
3 위험한 물건이나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충동적으로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으므로 위험한 요소에서 격리시키도록 돕는 것이 좋다.
4 자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자살 예방 전문가를 만나는 것. 이들은 실제적이고 유용한 도움을 준다.
/ 여성조선
취재 장세영 기자 | 사진 신승희 | 자료제공 한국자살예방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