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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미영씨 장례 절차는

쥴라이신부 2009. 7. 18. 09:16

여성산악인 고미영(41)씨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천126m)에서 실족한 지 닷새만인 16일(한국시간) 오후 사망이 확인됨에 따라 본격적인 장례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우선 16일 밤 해발 4천300m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에서 하루를 보낸 고씨의 시신은 17일 오전 헬기 편으로 이슬라마바드로 옮겨졌다.

현지 병원에서 부패 방지를 위한 작업을 거치게 되는 고씨의 시신은 검역 작업, 사망신고서 발부 등 각종 서류 절차를 거쳐 항공편으로 한국에 운구될 예정이다.

다만 서류 절차가 복잡한데다 현지에서 한국으로 오는 직항편이 없어 고씨의 시신은 내주 월요일인 20일께나 한국으로 운구될 가능성이 크다고 고씨 후원사인 코오롱스포츠측이 전했다.

김재수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원들은 시신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고국 땅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산악연맹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은 고씨 시신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진행된다.
발인이 끝나면 유족은 시신을 화장해 절반은 선산이 있는 전북 부안에, 나머지 절반은 고인과 히말라야 14좌 최초 완등 경쟁을 벌였던 오은선(43)씨와 김재수 대장에게 부탁해 고인이 오르지 못한 히말라야 8천m 3개 봉에 나눠 뿌릴 계획이다.

다만 유족과 대한산악연맹 그리고 고인의 후원업체인 코오롱스포츠측은 17일 오후 5시부터는 국립의료원에 분향소를 마련, 오는 21일까지 고인을 기리는 조문객들의 조문을 받는다.

 

 

 

 

[김재수 "살아서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천126m)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실족했던 여성산악인 고미영씨의 사망이 공식 확인됐다. 16일(한국시간) 고씨 후원업체인 코오롱스포츠측에 따르면 낭가파르밧을 함께 올랐던 김재수 대장 등 7명으로 구성된 구조대 선발대는 이날 메스너 루트 100m 위쪽 부근(해발 5천300m)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베이스캠프로 운구했다. / KBS 화면
지난 11일(한국시간)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천126m)을 오른 뒤 내려오다 실족한 지 닷새만인 16일 오후 사망이 확인된 여성산악인 고미영(41)씨의 시신이 임시 안치됐던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는 말 그대로 울음바다였다.

생존에 한 가닥 희망을 가졌던 구조대와 원정대원들은 고씨의 주검이 베이스캠프(해발 4천300m)로 들어오자 곳곳에서 울음과 탄식이 터졌다.

특히 죽음을 무릅쓰고 13시간의 사투 끝에 고인의 시신을 수습한 김재수(46) 원장대장의 슬픔이 누구보다 컸다.

산악계 선배인 김 대장은 이번에 낭가파르밧을 함께 오른 뒤 나란히 하산하다 고인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김 대장은 2006년 초오유(8천201m)를 제외하고는 8천m 고봉 10개를 함께 오르며 고인과 생사를 함께 한 누구보다 가깝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지였다.

김 대장은 고미영씨 시신을 베이스캠프로 운구한 뒤 고인의 오빠 석균(43)씨와 전화통화에서 “살아서 데리고 가야 했는데..”라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석균씨가 전했다.

김 대장은 이어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라면서 “미영이의 시신은 얼굴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은 깨끗하다. 다만 (기온이 너무 낮아) 동상에 걸렸다”라고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자신에게 전해왔다고 석균씨는 덧붙였다.

한국여성산악회 기형희 명예회장도 석균씨와 전화통화에서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 채 울먹였다.

기 명예회장은 애초 고인이 낭가파르밧 등정에 성공한 뒤 오르기로 했던 가셔브룸 Ⅰ(8천68m)에 먼저 가 캠프를 설치해놓은 상태였지만 이번 사고를 접하고 서둘러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로 넘어왔다.

석균씨는 “평소 기 회장이 미영이를 막내 동생같이 예뻐했다”라며 “기 회장이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더라”라고 전했다.

고씨의 시신은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밤을 베이스캠프에서 보낸 뒤 이날 오전 헬기 편으로 이슬라마바드로 운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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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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