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남한에 야생 호랑이 있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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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믿을 만한 흔적 없어…50년간 서식 증거 없으면 멸종”
한국에 호랑이가 있을까, 없을까?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한국 호랑이가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산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목격담과 증언은 수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되는 사진이나 자료는 아직 없다.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이 생긴 지도 불과 기백 년 이상밖에 되지 않은 듯한데 어떻게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라졌을까?
원래 한반도는 ‘호랑이 천국’이었다. 동물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호랑이는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90% 이상 되는 산악지역에 엄청난 수의 초식동물과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분포 등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엔 호랑이가 서울 4대문 안에서도 목격되었고, 심지어 궁궐 안에서 호랑이가 어슬렁거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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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베리아에서 들여와 국내 동물원에서 번식에 처음 성공했던 한국 호랑이 백두가 위엄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쉽게도 지난 2006년 수명을 다했다. / 서울대공원
‘창덕궁 후원에 범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북악에 가서 표범을 잡고 돌아왔다.’(1465년 9월 14일, 세조 11년)
‘창덕궁의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했다.’(1603년 2월 13일, 선조 36년)
‘창덕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1607년 7월 18일, 선조 40년)
이외에도 불과 85년 전인 1921년 고종 재위 시절 경복궁 안에 호랑이가 나타나 수백 명의 군사를 동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와 같이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넘쳐났다.
그렇게 많던 호랑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 ‘해수구제(害獸 驅除)’ 또는 ‘맹수구제(猛獸驅除)’, 즉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수난을 당했다. 일제는 사냥꾼들에게 대대적인 사냥 허가를 내줘 호랑이나 표범, 늑대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일제는 또한 한반도에 야마모토정호군(山本征虎軍)이란 대규모 원정단을 보내 호랑이를 남획하는가 하면, 호랑이 표본을 채집하겠다고 한반도 산하를 뒤지고 다녔던 미국 원정대도 있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호랑이가 없어 한반도 호랑이가 미국 학자들의 종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동식물의 종(種)에 대한 기본 정보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15~1942년에 이르기까지 포살된 조선의 호랑이는 전부 141마리였다. 표범의 경우는 그 수가 훨씬 많아 모두 1092마리가 사살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른바 공식기록인 셈이다. 공식기록이 이 정도면 실제는 호랑이 500마리 이상, 표범은 2000마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전 세계 야생 호랑이 수가 7000마리 정도이고, 한국 표범은 연해주 지역에 단 3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수가 엄청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이 남획당한 한반도 호랑이는 그 자취나 흔적, 기록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정도다. 그나마 1907년 전남 영광 불갑산과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를 잡은 사진이 남한의 마지막 호랑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1943년 이후엔 공식기록조차 없다.
일제에 의한 남획으로 한반도의 호랑이와 표범은 사실상 멸종 위기를 맞았고, 여기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 바로 한국전쟁이다. 3년간의 전쟁은 한반도를 초토화시켜 호랑이 서식지가 급감하고 생태 환경도 최악에 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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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1년 청송에서 대구문화방송 호랑이 특별취재팀이 호랑이로 추정되는 야생동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삵이라고 밝혔다. / 대구문화방송
종전 이후엔 호랑이에 관한 공식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표범에 관한 마지막 기록만 있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최후의 표범 한 마리가 마을 주민에 의해 생포됐다. 당시 1년생 수컷이었던 표범은 이후 창경원에 기증됐고, 직원들은 극진히 아껴 사람도 먹기 힘들었던 쇠고기를 매일 주며 여름엔 선풍기까지 틀었다. 이 표범은 오히려 극심한 운동부족과 과식으로 비만에 시달려 결국 한국 표범은 1973년 창경원에서 최후를 맞았다. 호랑이나 표범의 평균 수명이 20년 전후인 점을 감안할 때 자연 상태의 절반 정도만 연명했던 것이다. 당시 표범은 전신이 욕창에 시달려 박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재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한에 호랑이와 표범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한국의 호랑이를 찾아서 러시아와 만주 및 연해주 등지와 전국을 누비며 산에서 수개월을 지내기도 하는 등 구체적 증거를 모으고 있는 (사)한국호랑이보호협회 임순남(55) 회장은 “남한에 최소한 호랑이가 10마리 가량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구체적 증거로 자신이 모았다고 하는 호랑이 발자국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제시했다.
그는 1997년 11월~1998년 3월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에서 기거하며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고 주장하며 탁본을 떠서 “남한에 호랑이가 살고 있는 증거”라고 세상에 알렸다. 러시아 호랑이 생포 전문가인 크로글로브(2005년 작고)를 초청해서 현장을 방문, “평화의 댐 인근에 있는 해산은 호랑이가 살 수 있는 서식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그곳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명확한 호랑이의 흔적”이라는 증언을 얻었다. 이 자료로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해 호랑이 전문가를 만나 “한국에 야생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해 러시아와 미국 호랑이 전문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현장을 확인하기도 했다. 현장을 답사한 전문가들도 호랑이 발자국이 분명하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호랑이 전문가로 4번이나 방한한 드미트리 피크노프 박사도 2000년 화천을 방문, “평화의 댐 부근 해산엔 호랑이가 5마리 정도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피크노프 박사는 남한의 호랑이는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1998년 12월엔 원주에서 4명의 호랑이 목격자가 나왔다. 수렵허가가 난 상황에서 지인들과 치악산으로 사냥을 나간 원주경찰서 호저파출소 부소장 등은 70m 전방에서 호랑이를 목격하고 동시에 4발을 발포했으나 도망갔다고 주장했다.
부산 기장과 강원도 횡성 등지에서도 호랑이나 호랑이 발자국을 봤다는 목격자가 잇달았다. 영주 소백산에서도 송아지만 한 호랑이가 출몰하여 풍산개가 겁을 먹고 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고 했다. 이 호랑이는 고라니를 잡아먹고 머리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고 당시 언론들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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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년 10월 2일 경주 대덕산에서 농부를 덮친 호랑이를 일본인 순사 미야자케가 주민 수백여 명을 동원해 사살하고 기념촬영했다. 가운데가 당시 경찰서장이고 그의 오른쪽이 미아자케.
그러나 현장 조사에 나선 전문가들은 호랑이가 아니고 삵의 흔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산림청에서도 현재까지 호랑이라고 믿을 만한 어떠한 정황이나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으며, 영주 소백산 현장 답사 이후인 1998년 4월 “남한에 호랑이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임순남씨는 이렇게 반박했다.
“호랑이 3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150명의 인원과 150대의 카메라가 투입돼 2년 내내 촬영을 시도했지만 겨우 한 컷밖에 찍지 못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호랑이의 행동반경이 넓고 청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촬영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것 아니냐. 중국도 그렇게 해서 겨우 한 컷 건졌는데, 지금 남한에서 호랑이 촬영을 위해 인력과 장비를 어느 정도 투입하고 심혈을 기울였는지 되묻고 싶다.”
그는 18년간 호랑이를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한 컷을 담기 위한 모든 작업들은 자신을 위한 일이 결코 아니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호랑이가 자기네 종이라고 우기는 현실이다. 우리, 아니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던 한국 호랑이를 기필코 찾아내 국가 위상을 높이고, 차후엔 한국이 주축이 된 국제타이거클럽을 창립해 청소년과 어린 세대에 꿈을 키워줄 계획이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한 지역에 야생동물이 50년간 서식한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면 멸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라고 말한다. 이 논리에 의하면 한국의 호랑이는 멸종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표범에 대한 서식 증거나 구체적 목격자가 잇달아 나오면서 남한에서 표범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남한에 표범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10마리 이내에 머물 것이며, 이 경우 지속적인 근친교배 때문에 번식력이 떨어지고 결국엔 완전 멸종에 이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7년부터 1년여간 환경부의 백두대간 생태 프로젝트 중 야생동물조사에 참여한 야생동물연합 조영래 사무국장은 “남한에 표범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호랑이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실제로 표범과 마주쳤다고 했다. 2006년 낙동정맥 ‘사냥가능지역’의 생태조사에 나서 태백지역을 현장답사하던 중 표범과 마주쳤으나 너무 순식간이었고 놀라서 촬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 국장의 호랑이 존재 여부에 대한 “잘 모르겠다”는 표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조 국장은 명확한 결론을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10년간 매년 수백억 엔씩 들여 조사한 결과 수달과 몇몇 멸종 동물을 국가 차원에서 확인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는 특정 개인이 하기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부담되기 때문이다. 조 국장의 유보적 표현은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 정밀조사가 이뤄진 후 결론을 내릴 것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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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년 미야자케가 사살한 그 호랑이에 물렸다며 1980년 당시 84세였던 김유근 할아버지가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는 남한 호랑이의 존재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면서도 결론은 유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제보해온 호랑이 목격담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답사하면 호랑이 흔적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를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호랑이를 봤다는 정황은 잘못 봤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숲에서 순간적으로 빨리 지나치는 동물을 보고 막연히 호랑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등산인구가 엄청난데 행동반경이 넓은 호랑이의 흔적은 등산객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야 한다. 최근인 2009년 11월에도 오대산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와 조사를 다녀오는 등 전국 20여 곳 이상을 답사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인정할 만한 흔적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결론적으로 호랑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확인할 만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남한에 호랑이가 살 만한 지역으로는 삼척 산간지역, 태백산과 통고산 지역을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남한에 호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표범은 여러 증거로 볼 때 몇 개체 남아 있다고 본다.”
이전에 언론에 보도된 흔적에 대해서는 정확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화천에서 탁본했다는 호랑이 발자국에 대해서는 “호랑이 발자국이 맞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훌륭한 탁본에 비해 현장에 가서 실제 조사해보니 “찍힌 발자국이 전부 왼쪽 발바닥뿐이었다”며 석연찮은 부분을 지적했다.
그나마 조 국장과 한 박사는 호랑이의 존재 여부에 조금은 유보적이었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10년 이상 야생동물의 흔적을 좇아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고 다닌 최현명(46)씨는 이렇게 명쾌히 밝혔다.
“현재 법적으로 멸종위기동물 Ⅰ종인 호랑이는 남한에 명확하게 없습니다. 2002년 청송에서 송아지를 먹다 남긴 흔적은 호랑이라고 떠들썩했으나 조사 후 삵으로 판명났습니다. 표범은 마지막 몇 마리 정도 남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호랑이가 만약 있다면 우리나라와 같이 등산객이 많은 산에서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격자들도 멧돼지나 개 발자국을 보고 호랑이 발자국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임순남씨의 ‘호랑이 존재설’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부인했다.
“임순남씨의 야생동물에 대한 열정은 인정하지만 그는 한 번도 호랑이 흔적에 대한 전체 학자들의 모임을 주선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혼자서 작업을 하고 결론을 내린 뒤 공표하곤 했습니다. 전체 학자들이 모여 공론의 장을 만들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작업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최씨는 동물보존학에서 육식동물은 덩치가 크면 클수록 생존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고양이과의 호랑이와 삵을 비교하면 삵이 남한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요인은 3㎏ 남짓 되는 가벼운 몸무게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벼운 몸무게는 이동하기 쉬울 뿐 아니라 많은 먹이를 필요로 하지 않아 어디서든 생존이 가능하다. 반면 성체 몸무게가 평균 150㎏에 달하는 호랑이는 연간 약 3t의 먹이를 필요로 하고, 사냥 성공률도 평균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 번 사냥에 드는 에너지가 굉장히 많고 생존 조건이 까다로운 동물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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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7년 영광 불갑산에서 한 농부가 함정을 파서 잡은 호랑이를 일본인 상인 히라구치가 사서 박제해서 목포의 한 초등학교에 기증했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 흔적으로 지금까지 보관돼 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여 년간 호랑이 다큐멘터리를 7편이나 촬영하고, 곰, 스라소니 등 총 20편의 야생동물 촬영에 성공한 EBS 박수용 PD는 남한의 호랑이 존재에 대해 더욱 부정적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호랑이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힘들지만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힘들다”며 “그렇다고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있어도 근친교배로 인한 의미 없는 수준의 개체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증거로 제시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호랑이 발자국이라고 주장하는 현장에 가서 확인한 결과, 개과와 고양이과의 발자국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도 그것조차 구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호랑이가 죽였다고 주장하는 멧돼지나 고라니 사체의 경우도 개과는 여기저기 상처를 낸 후 물어뜯는 반면 고양이과는 단 한 곳의 상처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혀 죽인 후 엉덩이부터 내장을 꺼내 먹는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양이과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소화율이 높아 배설물에 이물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제보가 들어온 배설물은 거의 전부 이물질이 많은 개과 동물이나 멧돼지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봤다고 주장하는 목격담도 못 믿을 수준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어흥’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호랑이 소리를 들었고, 급기야 ‘호랑이를 봤다’로 확대해석한다는 것이다. 박 PD도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있다고 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할 만한 증거도 아직 명확히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단지 개인적으로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멧돼지와 같이 덩치 큰 동물을 산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호랑이로 둔갑시켜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동물을 목격한 사람은 자기가 본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호랑이로 만들어간다”고 머릿속 인식과정의 오류에 대해서 한결같이 지적했다. 최근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나,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극소수의 개체만 살아남은 상태에선 다시 자연 번식으로 생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백두산 일대와 중국 동북부 지역에 호랑이 5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 호랑이의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이 ‘철의 장막’에 걷힌 백두대간을 타고 자유롭게 남북한을 왕래할 수 있다면, 그날이 바로 한국 호랑이의 새로운 원년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전까지 ‘호랑이 천국’이었던 한반도에서 한국 호랑이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일본인 엔도씨 국제학술대회 발표
“일제 남획으로 호랑이 멸종… 1922년 경주에서 최종 포획”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의 삶, 인간의 삶’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12월 15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일본 야생조류협회 명예회장으로 있는 엔도 기미오가 ‘한반도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란 주제를 발표했다.
엔도는 “조선총독부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호랑이를 방해가 되는 동물로 치부, 경찰과 헌병들이 수천 명의 주민을 동원해서 매년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들을 사냥했으며, 표범, 곰, 늑대도 동시에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그 결과 한반도 호랑이를 멸종시킨 건 일제의 남획이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으며, 일제의 만행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굉장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엔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이미 한반도에 호랑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전했다. 도요토미는 호랑이를 사냥해서 고기와 내장을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게 해 먹었다고도 한다.
그렇게 많던 한국 호랑이가 박제도 없고, 1907년 영광 불갑산에서 잡힌 개체의 것 단 1개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국 농부가 함정을 파서 잡은 호랑이를 일본인 상인 하라구치가 사서 교토로 보내 박제로 만들어 목포의 초등학교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학교에 보관돼 있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혔다. 1980년 당시 84세이던 김유근 할아버지가 1922년 지게를 지고 사람들과 함께 대덕산으로 나무하러 갔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뒤를 덮쳤다고 한다. 다행히 지게가 있어 깊은 상처를 입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이 소식을 들은 미야자케 순사가 주민 수백 명을 동원해서 사살하고, 일본 황족에게 그 가죽을 헌상했다. 그게 남한의 호랑이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아쉽게도 그 이후부터는 공식기록이 전혀 없고 목격담만 수없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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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임순남 / 조영래 / 한상훈 / 최현명 / 박수용
임순남 호랑이보호협회 회장
“만주서도 150대의 카메라 2년간 동원했지만 단 한 컷밖에 촬영 못해… 남한에 최소한 10마리 서식 자신”
야생동물연합 조영래 국장
“호랑이는 명확한 증거 없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결론 못 내려…표범은 낙동정맥 생태조사 중 직접 마주쳐”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
“학술적으로 인정할 만한 흔적 아직 못 찾아…
행동반경 넓어 삼척, 태백산·통고산 등지서는 서식 가능”
야생동물박사 최현명씨
“법적으로 멸종위기동물Ⅰ종이지만 남한에 없어…
등산객 많아 노출 쉽고, 동물보존학상 덩치 크면 생존 어려워”
10여년 간 다큐 촬영 박수용 PD
“목격담 대부분 못 믿을 수준…개인적으로 있었으면 좋겠지만
있다고 해도 근친교배로 의미 없는 개체수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