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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도 가짜? '가게무샤(그림자 무사·독재자의 대역)' 진실 게임
쥴라이신부
2009. 11. 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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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가게무샤’(1980)의 한 장면. / 조선일보 DB
조선닷컴 11월 2일 보도
가게무샤(影武者)는 '그림자 무사'란 뜻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영주(領主)였던 다이묘(大名)들이 전쟁터로 나갈 때 위험을 줄이려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을 대신 내세우는 위장전술을 썼다. 그 대역(代役)을 가게무샤라 했다.
가게무샤를 즐겨 쓴 무장이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가게무샤'에선 첩들마저 '가짜'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걸 알아낸 건 다케다의 애마(愛馬)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픽션이지만 다케다를 비롯한 영주들은 실제로 가게무샤를 활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위급 상황에서 주군(主君)의 대역을 맡은 이야기는 우리 역사에도 있다. 648년 당에 사신으로 갔다 오던 신라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수행원 온군해(溫君解)가 김춘추로 위장해 대신 죽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도 927년 후백제와의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포위됐을 때 용모가 비슷한 장군 신숭겸(申崇謙)이 그의 복장을 입고 싸우다 전사한 일이 있다. 현대에도 '가게무샤'의 존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히틀러, 스탈린, 카스트로, 카다피, 사담 후세인처럼 하나같이 독재자들이다. 독재자일수록 암살을 두려워해 많은 공식 석상에서 자기와 얼굴이 비슷한 대역을 내세웠다는 얘기다.
히틀러의 경우 "사진마다 키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부각됐다. 일본 저널리스트 오치아이 노부히코(落合信彦) 같은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심지어 권총 자살 후 발견된 히틀러의 불탄 시신이 실은 대역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럼 진짜는? 여기서부터 숱한 추측이 난무한다. 진짜 히틀러는 남미로 탈출해 성형수술을 한 뒤 여생을 편안히 보냈다 혹은 러시아 예카테리나궁의 호박방에서 탈취한 보물을 군함과 U보트에 싣고 도피했다는 것이다.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었지만 최근 뜻밖의 보도가 나왔다. 올 9월 미국 코네티컷대의 닉 벨란토니 교수가 러시아 국가기록보존국에 보관된 '히틀러의 두개골'을 DNA 분석해 보니 '20~40세 여성'이란 결과를 얻었다고 밝힌 것이다. 이 두개골이 히틀러가 아니라 33세의 나이로 동반 자살한 애인 에바 브라운의 것은 아니었을까? 두개골에는 총알 자국이 나 있지만 브라운은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네 가지 중의 하나다. 분석이 잘못됐거나, 브라운이 권총 자살했거나, 히틀러가 여성이었거나, 두개골의 주인이 '여성 가게무샤'였던 것이 된다. 하나같이 믿기 힘든 얘기들이다.
'가게무샤'가 내막을 폭로한 경우도 있다. 러시아의 전직 배우 펠릭스 다다예프(83)다. 그는 지난해 4월 자신이 철혈독재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가게무샤' 4명 중 한 명이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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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릭스 다다예프 / 이오시프 스탈린
사담 후세인이 '가게무샤'를 활용했다는 얘기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19년 간 '가짜 후세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책이 레바논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그는 강제로 성형수술을 당한 뒤 후세인을 흉내내는 훈련도 받았다고 했다.
아랍 시사주간지 '알 마잘라'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진짜 후세인은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를 대신한 것은 3명의 대역이었다"는 독일 전문가의 주장을 싣기도 했다.
'김정일 가게무샤'설을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다. 그는 지난해 8월에 출간한 저서 '김정일의 정체'에서 "진짜 김정일은 2003년에 이미 당뇨병으로 죽었고 그 이후에 등장한 김정일은 대역"이라고 했다.
시게무라 교수는 그 근거로 ▲2003년 9월 9일부터 10월 20일까지 김정일의 동정(動靜)이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점 ▲2006년 봄에 촬영된 김정일의 사진에서 신장이 2.5㎝ 커진 점을 들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과 김정일 여동생 김경희의 통화 내용 중 "저놈은 장군님 지시를 지키지 않고 있으며 우리 가족을 소홀히 대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저놈'이 '가게무샤'일 것이라는 얘기다.
이 말이 맞다면 2007년 10월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을 한 김정일도 '가게무샤'란 얘기가 된다. 그러나 시게무라 교수는 ABC와의 인터뷰에서는 "올 4월 5일 최고인민회의에 나타난 병약한 모습의 김정일이 진짜라면 8월에 빌 클린턴과 만난 사람이 대역"이라고 했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시게무라 교수가 계속 말을 바꾸는 것만 봐도 신뢰성이 없다"면서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 갑자기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인 것은 상당히 의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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