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를 헤아리기 어렵다는 곤충의 세계, ‘숲 속 보물’이라는 버섯을 포함한 미생물의 세상…. 숲 속에서는 다양한 생물종이 물, 대기, 햇살 같은 無機的(무기적)인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다양한 숲 속 생물종의 일부를 엿보기 시작했다. 생물종 다양성의 보전은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고, 전 세계 사람들의 책임과 의무가 됐다.
국가는 산림 생물종의 목록에서부터 구체적인 보전전략까지 수많은 일을 수행하고 있다. 산림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분류연구’는 이 중 첫 단계에 해당된다. 우리 땅에 무엇이 살고 있으며, 어떤 곳에 어떤 상태로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물종의 분류연구는 한 국가가 ‘생물주권’을 논하기 위해 해야 하는 선결과제다.
숲 속 생물종 가운데 식물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光合成(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며, 숲 속 세상을 운영하는 생산자이기 때문이다.
현대적 의미의 식물연구는 일제통치하에서 주로 일본인 학자, 특히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 교수에 의해 이뤄졌다. 故(고) 鄭台鉉(정태현) 전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학자로서는 최초로 1956년 <한국식물도감 상·하>를 발간하며 3062종의 식물을 도감에 기록했다. 이후 1989년 故 李昌福(이창복)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대한식물도감>이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식물은 207科(과) 1050屬(속), 약 4100여 종류(변종 및 품종 포함)로 정리됐다.
식물종은 분류학적 견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정확한 분포종의 수를 파악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분포종은 지속적인 연구결과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자원을 파악한 결과, 총 4881종류가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일부 도입식물 442종류와 귀화식물 290종류가 포함돼 있다.
자생식물과 귀화식물
![]() |
생태계에 위해종으로 지정된 서양등골나무. |
우리나라에 분포하며 우리나라 식물이라고 말하는 식물 가운데 起源(기원)과 의미가 다른 식물들이 존재한다. 크게 구분하면, 저절로 이 땅에 자라나게 된 自生(자생)식물, 植物區系學(식물구계학·한 지역의 식물의 種과 그 植生 구성을 연구하는 학문)상으로 원산지는 다른 나라지만, 다양한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歸化(귀화)식물이 있다. 귀화식물은 우리나라 식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땅에 스스로 분포하는 종류이므로 분포식물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자생식물은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저절로 자라는 식물이다. 단, 예전에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野生(야생)상으로 자라는 것, 그리고 현존하는 種(종)을 기준으로 하지만, 현존하는 종과 동일한 종의 화석이 존재하는 경우도 자생식물에 포함시켰다. 냉이와 차나무가 前者(전자)에 해당하고, 은행나무와 같은 경우가 後者(후자)에 해당한다.
배롱나무, 앵두나무 같은 식물은 우리 식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자생하는 분포지를 갖고 있지 않다. 도입된 식물이 확실하지만 워낙 오래전에 도입돼 우리 식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도감에 수록돼 있으나 아직 植栽(식재)하기 전에는 스스로 번식해 자생적으로 자라지 않는다. 이들은 자생식물도 귀화식물도 아니지만 넓게 보아 우리의 소중한 식물임에는 틀림없다.
국가적으로 볼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특산식물이다. 우리나라에 희귀하게 분포해 愛之重之(애지중지)하는 越橘(월귤·철쭉과의 상록 소관목)과 같은 식물은 한반도의 북쪽 숲에서 지천으로 발견된다.
특산식물이란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식물을 말한다. 특산식물은 우리나라 고유의 식물자원으로서 분류학적 가치는 물론이고, 자원화했을 때 그 가치가 倍加(배가)된다.
최근 국립수목원이 문헌에만 기록돼 있어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분류학적 특징에 논란이 있는 종류들을 제외하고 특산식물을 정리한 결과,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은 328종류로 나타났다. 분류학적으로는 의미가 적지만 자원으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129품종을 포함하면 특산식물은 457종류로 늘어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미선나무속(Abeliophyllum), 개느삼속(Echinosophora), 모데미풀속(Megaleranthis), 금강초롱속(Hanabusaya), 금강인가목속(Pentactina), 양치식물인 제주고사리삼속(Mankyua) 등 6개의 특산속이 살고 있다. 즉, 식물학적인 집안(속)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종이므로 이 정도는 기억해둘 만하다.
귀화식물, 이로운가 해로운가?
![]() |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
귀화식물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귀화식물 역시 우리나라 식물자원의 하나지만, 특산식물과는 다른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 자칫 우리나라 생태계를 위협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우선, 귀화식물은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므로 이미 다른 나라에서 이 종들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이 많다.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조사한 귀화식물의 종류는 290종류다. 매년 한두 종씩 추가되고 있으며, 이웃 일본과의 급속한 식물 교류를 감안할 때 귀화식물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수도 있다.
달맞이꽃, 개망초, 소리쟁이, 개비름, 다닥냉이, 자운영, 수박풀, 컴프리, 오리새…. 이런 것들이 귀화식물이다. 귀화식물은 다양한 경로로 이 땅에 들어와 살게 됐다.
미국쑥부쟁이는 꽃꽂이 동호인들 사이에 ‘백공작’으로 알려져 있다. 꽃꽂이 장식 소재로 사용하던 도입식물이 야생으로 퍼져나간 것이고, 오리새나 큰김의털 같은 식물은 沙防工事(사방공사·사태막이공사)용으로 들여왔던 것이 퍼져나간 경우다. 단풍잎돼지풀은 전방 지역에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군수물품, 사료나 곡물에 섞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植物相(식물상) 조사를 하다 귀화식물을 발견하면 그 지역은 그만큼 자연성이 손상된 곳이라 판단한다. 따라서 도시화 지수가 높게 나오기도 한다. 귀화식물 중에는 서양등골나무처럼 毒性(독성)이 있거나 숲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危害種(위해종)으로 분류된 종류도 있다.
우리 주변에 시도 때도 없이 쑥쑥 크는 멋대가리 없는 민들레는 알고 보면 대부분 서양민들레다. 이런 귀화식물들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전략’으로 새로운 땅들을 점령해 자생식물들을 밀어내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하지만 300종류 가까이 되는 귀화식물 모두가 우리의 자생식물들이 살아가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식물들은 아니다. 귀화식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귀화식물을 정확히 알고, 잘 활용하면 된다.
귀화식물이 번성하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 귀화식물의 대부분은 다량의 光線(광선)을 필요로 해 기존의 울창한 숲에 들어가서 살 수가 없다. 때문에 귀화식물은 사람들이 훼손한 지역에 먼저 자리를 잡고 왕성한 번식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식물에 學名 부여하기
![]() |
우리나라 특산속, 특산종의 하나인 미선나무. |
‘달맞이꽃 기름’으로 유명한 달맞이꽃,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자운영, 길을 환하게 만드는 원추천인국, 네잎클로버의 행운이 담겨 있는 토끼풀…. 무조건 배척하기에는 각각의 식물들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들이 너무 다르다.
물론 귀화식물이 무조건 좋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귀화식물을 제대로 알아야 관리나 이용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냉이도 자생식물이라고 하지만, 15세기 전후에 밭잡초와 더불어 들어왔다고 한다.
숲 속에 살고 있는 식물의 이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이름과 學名(학명)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먼저 國名(국명)은 우리말 이름을 말한다. 하지만 소나무를 赤松(적송), 곰솔, 海松(해송)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동일한 식물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기도 하고 맞춤법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여러 국명이 존재할 경우, 先取權(선취권) 등이 고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제 명명규약에 따라 정확히 적용해야 하는 학명과는 달리 보편적인 인식을 우선시한다. 반면, 학명은 전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술적인 이름인 만큼, 국제 식물명명규약에 따라 한 식물종에 대한 올바른 학명은 두 개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식물에 대한 표준화되고 통일된 식물목록(국명 및 학명)의 완성은 체계적인 국가식물자원관리의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 것을 사용해야 옳은지 기준이 없어 혼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식물의 이름도 해석상의 차이에 의해 잘못 기록돼 일부에서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 |
친근감을 주며 열매기름을 약으로 쓰는 달맞이꽃. |
국가표준목록은 이처럼 혼란스럽게 통용되고 있는 식물의 이름을 표준화하고자 식물별 전문연구자 40인이 참여해 최근의 분류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식물명을 정리하고, 국립수목원과 한국분류학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국가식물목록위원회에서 이를 검토·심의해 결정한 목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국립수목원은 ‘국가표준 식물목록’을 완성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식물명에 대한 최신 자료를 반영해 관리하고 있고,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거쳐 일반에게 인터넷상((http://www.koreaplants.go.kr:9101)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정부부처 및 관련 연구기관, 교육기관 등 일반 식물관련 전 분야에 걸쳐 작성된 통일된 식물목록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의 식물자원 정보를 통합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마련돼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수년간 수십 명의 노력으로 발전시켜 온 표준화된 목록과 시스템을 법제화해 국가적 효율을 높이고, 국민들의 혼란을 줄이려는 시도가 아직도 일부 부처 간 異見(이견)으로 진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아무튼 ‘국가표준식물목록’ 완성을 통해 숲 속 식물들에 대한 기초연구와 정책으로의 연계활동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우리의 숲 속 식물들이 더 이상 이름 없는 들풀, 無主空山(무주공산)의 雜木(잡목)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살아 있는 녹색생명, 식물을 다루는 일은 담당기관의 힘과 의도로만 될 수 없다. 섬세하고도 진중한 기술과 애정이 필요한 일이다. 수십 년간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이 추진해 온 숲 속 식물을 포함한 생물들에 대한 노력에 보다 큰 격려와 지원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