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철거된 하얼빈 안중근 의사 동상 한국에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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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철거된 하얼빈
안중근 의사 동상 한국에 와도
설 자리 못찾을 수도
뤼순 거쳐 내달 1일 인천으로 공공장소
전시엔 난관 많아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세워졌던 안중근 의사 동상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사건 100주년인 올해 한국에 온다.
연합뉴스 8월 11일 보도
중국 하얼빈의 안중근(安重根) 의사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세워졌다. 하얼빈역에서 2㎞, 하얼빈 공원에서 400m 떨어진 중양다제(中央大街) 공터로, 백화점이 밀집해 하루 평균 20만명이 오가는 곳이다.
동상은 재중(在中) 사업가 이모(50)씨가 자비 1억7000만원을 들여 만든 것이다. 그는 중양다제의 한 백화점 일부를 임대해 한국 상품을 들여다 파는 무역업자다. 그가 안 의사 동상을 장사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긴 했지만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안중근의사숭모회 관계자들도 동상 건립을 돕기 위해 하얼빈으로 와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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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초 중국 하얼빈 도심에 무허가로 세웠다가 11일 만에 철거된 안중근 의사 동상. / 조선일보 DB
하얼빈 중심의 안 의사 동상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서울 명동 복판에 중국인 사업가가 중국 영웅의 동상을 세운 격이었다. 중국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동상 건립을 묵인했다. 이씨와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동상이 화제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건립 11일 만에 철거된 것이다. 중국측은 안 의사 동상을 철거하면서 "외국인 동상 건립을 불허한다는 기존 방침을 어길 수는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 후 안 의사 동상은 어떻게 됐을까.
동상은 지금까지 이씨의 백화점 사무실 안에 있었다. 이씨는 "백화점 구석에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최대한 예를 갖춰 실내에 모셔두고 주변도 깔끔하게 꾸몄다"고 했다.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인 올해 이 동상의 국내 반입이 추진됐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공공장소에 동상을 세우려면 관련 법령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입장이다. 작품성에 의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이씨는 "안 의사 동상이 조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얼빈시 등 중국 정부도 그걸 원한다"고 했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와서 귀찮으니 동상을 '처분'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동상은 본체가 3m, 받침대를 포함하면 5m 높이의 입상(立像)으로 청동 1.5t이 들어갔다. 순국 당시의 젊은 기상을 표현하려 앞 단추를 풀어헤치고 팔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고 왼손 무명지도 짧게 제작했다.
동상 디자인은 육사 출신 현역 군인이 맡았다. 그는 이씨의 친구다. 주물작업 등은 하얼빈 공대 양스창 교수가 담당했다. 이씨는 "내 친구의 디자인 실력은 수준급이며 비용 때문에 중국인 교수에게 제작을 맡겼다"고 했다.
이씨와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는 지난 15일 동상을 하얼빈 백화점에서 꺼내 창춘(長春)∼선양(瀋陽)∼다롄(大連)∼뤼순(旅順) 경로를 따라 서울로 옮겨올 계획이다. 이 코스는 안 의사가 의거를 일으킨 뒤 압송될 당시의 경로와 똑같다.
뤼순에선 실제 재판 기간인 14일 동안 머문 뒤 다음 달 1일 인천항으로 들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동상을 서울 백범기념관에 잠시 보관하다가 의거 기념일인 10월 26일 시내 번화가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범기념관은 "사전협의는 고사하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의거 100주년과 내년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안중근 기념관 신축을 추진 중인 안중근의사숭모회도 하얼빈 동상의 이전 추진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현재 기념관 앞에 있는 안 의사 동상을 새로 제작하려고 하는데 장애가 될까 우려해서다. 3년여 동안 중국 하얼빈 백화점 사무실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안 의사 동상은 자칫 고국에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해 떠돌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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