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추리소설' 하면 떠오르는 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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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사냥꾼 모자에 파이프담배… 추리소설속 탐정의 계보는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뒤팽이 원조
뤼팽은 怪盜이자 탐정역할도 대공황기엔
행동파 탐정 출현
한여름 무더위를 날릴 토종 추리소설 출간이 줄을 잇고 있다.
연합뉴스 7월 28일 보도
'추리소설'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사냥꾼 모자에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처음 보는 방문객의 내력을 줄줄 짚어내다 마지막 순간 "범인은 바로 당신이오!"라는 멘트를 날리는 '탐정'이다. 그 계보(系譜)를 파헤쳐 본다.
"그는 수수께끼, 어려운 문제, 암호를 좋아하며 그것들을 풀 때 보통 사람의 이해력으로는 초인적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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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귀스트 뒤팽.
최초의 근대 추리소설인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街)의 살인사건'(1841년)에 등장하는 오귀스트 뒤팽의 캐릭터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추리력만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안락의자형 탐정'이었다.
엽기 사건을 해결하는 두뇌 회전, 유별난 성격, 홈스 시리즈의 왓슨 같은 보조자, 의외의 범인…. 뒤팽은 여러 면에서 후대 탐정물의 기준이 됐다. 1850년 첫 사립탐정이 미국에서 출현하기 9년 전에 탄생한 '소설 속 탐정'이었다. 이후 포를 계승한 곳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었다. 윌리엄 윌키 콜린스(영국)의 카프, 에밀 가보리오(프랑스)의 르콕을 거쳐 지금까지도 탐정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인물이 출현한 것은 1887년의 일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뒤팽은 별 볼일 없는 친구야"라는 대사와 함께 아서 코난 도일(영국)의 '진홍색 연구'에 등장한 셜록 홈스였다. 그는 바지에 묻은 진흙만 보고서도 런던의 어느 곳에서 무얼 하다 왔는지 알아내는 추리력을 갖춘 동시에 직접 액션을 펼치는 '현장형 탐정'이었다.
1907년 프랑스에서 또 다른 유명 탐정이 등장했다.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이었다. 변장술과 탈옥에 능하고 부패한 정치인과 부자를 응징하는 뤼팽은 괴도(怪盜)이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맡은 것이다. 르블랑은 몇 작품에 셜록 홈스를 등장시켜 뤼팽과 대결하게 했다. 도일의 항의를 받자 이름을 '헐록 숌스'로 고쳤다.
20세기 전반 영국에서 등장한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는 콧수염을 왁스로 붙이고 다니는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지만 '회색 뇌세포'의 추리력을 발휘했다. 같은 작가의 미스 마플도 70대 할머니지만 모두 고전 탐정의 계보에 속한다.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는 허술한 외모를 지녔지만 범인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악하는 탐정으로 '형사 콜롬보'의 모델이 됐다.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의 손다이크 박사는 최초의 법의학자 탐정으로 과학수사물의 길을 열었다.
프랑스에서는 가스통 르루의 신참 신문기자 조셉 를루타뷰와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경감이 출현했다. 메그레 경감은 현장에서 범행의 원인과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인물로 종전 '천재 탐정'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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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셜록 홈스. 2 아르센 뤼팽. 3 에르큘 포와로. 4 메그레 경감. 5 퀸 부자(父子). 6 샘 스페이드.
미국에서도 개성 넘치는 탐정들이 나왔다. 밴 다인은 역사상 가장 박식하고 완벽한 탐정인 파일로 밴스를 등장시켰다. 엘러리 퀸은 전직 배우이자 청각장애인인 드루리 레인, 작가와 이름이 같은 사립탐정 엘러리 퀸을 만들어냈다. 경찰 간부인 아버지와 콤비를 이뤄 활동하고 결말 직전 독자에게 '맞혀 보라'는 도전장을 내미는 엘러리 퀸은 미국의 대표적 탐정으로 자리 잡았다. 렉스 스타우트는 일하는 걸 귀찮아하는 거구의 탐정 네로 울프를 선보였다.
일본에선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긴다이치 고스케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주인공의 할아버지로 설정되기도 했다.
대공황기인 1930년 무렵부터 미국에서 새 스타일의 추리소설이 등장했다. '비정하다' '현실적이다'라는 뜻의 '하드보일드(hard-boiled)'라 불린 계열의 작품들은 거친 묘사와 사실주의를 특징으로 숱한 '행동파' 탐정들을 낳았다.
대실 해미트의 샘 스페이드는 범인을 밝혀낼 뿐 아니라 직접 대결을 펼친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는 "인생은 비정하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비정함만으로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대사를 읊는다. 두 인물 모두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역할을 맡았다('말타의 매'와 '빅 슬립').
20세기 중반 이후 추리소설은 스파이, 서스펜스, 법정물 등 수많은 장르로 폭을 넓혔다. 하드보일드를 계승한 이언 플레밍(영국)의 제임스 본드는 탐정과 범인 사이의 싸움을 냉전기 양 진영의 대결로 확장했다.
얼 스탠리 가드너(미국)의 페리 메이슨은 탐정의 자리를 꿰찬 변호사였다.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의 윌리엄 수도사는 탐정 캐릭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기호학과 접목한 결과를 보여줬다. 전통 추리기법으로 회귀한 콜린 덱스터(영국)의 모스 경감도 있었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미국)의 소설처럼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나올 뿐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 작품들도 출현했다. 하지만 댄 브라운(미국)의 종교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 제프리 디버(미국)의 법과학자 링컨 라임처럼 현재의 많은 작품에서도 '탐정'의 역할을 맡는 주인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난해 추리소설 100주년을 맞은 한국에도 탐정이 있긴 있었다. '한국 추리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내성의 '마인'(1939)은 '모리스 르블랑'에서 딴 유불란 탐정을 등장시켰다. 1960년대 방인근의 소설에서는 장비호 탐정이 활약했고, 이후 김성종의 오병호 형사, 이상우의 추병태 경감도 있었다.
박광규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은 "그동안 국내 추리소설이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우리나라에 탐정이란 직업 자체가 없었는데 캐릭터의 연속성마저 부족했다"며 "일본과는 달리 한국 추리소설의 고전 대부분이 절판된 탓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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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영화화된 캐릭터라는 셜록 홈스의 최신작 <셜록 홈즈>의 예고편. /유석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