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거짓말 노이로제'에 걸린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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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노이로제'에 걸린 법정
증거 조작은 다반사 각본 짜고 예행연습까지
위증행위 갈수록 지능화
뇌물죄로 기소된 김효겸 전 서울 관악구청장은 지난 5월 뇌물을 준 A씨가 돈이 오간 사무실 구조를 법정에서 자세하게 진술하자 궁지에 몰렸다. 그러자 김 전 구청장은 소파를 없애는 등 사무실 내부를 완전히 바꾸고 나서 측근 B씨를 증인으로 세웠다.
B씨는 법정에서 "A씨가 진술한 사무실 구조가 실제와 다르다"며 거짓 증언했고, 재판부가 진실을 가리기 위해 현장검증에 나섰지만 사무실 구조는 B씨가 설명한 대로였다.
하지만 김 전 구청장의 재판을 담당한 공판검사가 끈질기게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예전 사무실 사진을 찾아냈고, 잔꾀는 탄로났다. 김 전 구청장은 뇌물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위증교사 혐의가 추가됐다. B씨는 위증죄로 기소됐다.
민·형사 재판을 가릴 것 없이 법정 위증행위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어 법원·검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악의적이고 교묘한 위증이 사법의 신뢰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법원이 의욕적으로 시행 중인 공판중심주의(법정 진술이 중심이 되는 재판)를 정착시키는 데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증거를 조작하는가 하면 미리 각본을 짜고 '예행연습'까지 하고 법정에 오는 경우가 많아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속아 넘어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C씨는 공무원인 형이 뇌물죄로 기소되자 형이 돈을 받았다는 시각에 자신과 함께 있었다며 법정에서 거짓 알리바이를 댔다. 그러나 공판검사가 뇌물이 오간 식당에서 돈을 건넨 사람이 결제한 법인카드 영수증과 주차장 직원이 두 사람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C씨의 거짓말을 밝혀냈다. C씨도 위증죄로 기소됐다.
이상철 대검 공판송무과장은 "최근 2~3년 사이 공판검사들이 위증 사범을 따로 수사해서 정식재판에 회부하는 경우가 한달에 3~4건에 이른다"면서 "위증사범 적발에 신경 쓰느라 공판검사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사재판에서는 워낙 위증이 만연해서 판사들도 무덤덤해진 지 오래다. 형사재판과 달리 거짓말을 하더라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한 원로 변호사는 "민사법정은 거짓말 대회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위증이 판치는 데는 위증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인이 사건 당사자와 아는 사이인 경우에는 증인이 사건 당사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주지 않으면 몰인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 해 위증죄로 기소되는 사람이 10명 안팎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검찰과 법원은 최근 위증죄를 엄단하는 추세다.
과거 벌금형 정도로 끝낸 위증사범들을 가급적 정식재판에 회부하고 있고, 실형선고율도 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04년 위증사범 937명을 입건해 472명을 정식재판에 회부했으나, 지난해에는 1786명을 입건해 1251명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반면, 약식기소는 409명(2004년)에서 375명(2008년)으로 줄었다. 법원도 지난 2005년 위증죄로 기소된 피고인 98명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으나, 지난해에는 247명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양형(量刑)기준은 위증죄에 대해 최대 4년까지 실형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민만기 공판1부장은 "어려서부터 법정에서의 거짓말이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갖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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