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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범어사, 일제 잔재들 이제야 치운다

쥴라이신부 2009. 8. 16. 08:56

[부산·경남] 범어사, 일제 잔재들 이제야 치운다
표지석, 석탑난간 등 어제부터 철거 시작
 
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부산의 대표적 천년고찰 범어사(梵魚寺)가 일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13일 오전 11시 30분쯤 부산 범어사 대웅전 앞마당 3층석탑 앞.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범어사 주지 정여스님 등 8명이 석탑 옆 일제 표지석에 밧줄을 연결해 잡아당겼다. 표지석 주변을 미리 파놓긴 했지만 여러 차례 잡아당기기를 반복한 끝에 길이 1m 가량되는 육중한 화강암 표지석이 "쿠~웅" 하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표지석 뒷면엔 '조선총독부'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한국 전통 사찰로 유명한 범어사에 1937년 세워진 이 표지석이 70여년 만에 뽑힌 것이다. 이어 포크레인을 동원해 석탑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일본식 난간도 해체했다.

1911년 일제의 사찰령에 따라 사찰운영과 주지 임명권이 조선총독부 손에 넘어가면서 친일성향의 승려를 주지로 임명하자 우리나라 절들은 급속히 일본식으로 변해갔고, 특히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범어사는 치명적이었다.

정여 스님은 "이번 왜색 잔재 청산은 사찰 깊숙이 뿌린 내린 일제 잔재를 뿌리 뽑아 민족문화를 회복시키는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천년고찰인 부산의 범어사가 해방 64년이 지나도록 남아 있는 일제 잔재를 걷어내는 청산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13일 범어사 스님들이 직접 대웅전 앞마당 3층 석탑의 일 본식 화강암 난간과 조선총독부 표지석 등 일제때 세워진 구조물들을 철거하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범어사는 이날 표지석 제거와 난간 해체에 이어 일본이 최하층 기단부를 세우는 바람에 고유의 단아하고 소박한 멋이 사라진 3층 석탑의 원형 복원 작업도 곧 시작한다.

뿐만 아니다. 대웅전 앞마당 정면을 막고 있는 강당으로 쓰이는 일본식 양식의 보제루(普濟樓)를 누각 형식으로 복원하고, 일본식 석축쌓기와 축성법으로 만들어진 범어사 외벽 부분 등도 철거한 뒤 다시 만들 계획이다.

또 경내 일본식 난간 84m와 대웅전 석축 화단에 일본 황실을 상징하기 위해 심은 금송(金松) 세 그루도 들어내고,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에 있는 일본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우리 소나무로 다시 심는 작업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같은 사례를 포함해 각종 일본 양식의 강제적 도입으로 범어사는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가람배치에서 왜곡된 형태로 변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범어사는 아예 민족문화 복원 및 중·장기 발전을 위해 '범어사 종합정비 계획(2014년 완료)'을 세웠다. 2011년에 끝나는 1단계 사업에 50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표지석 제거가 이 계획의 첫 걸음이었다.

범어사 종합정비계획 연구책임자 서치상(부산대 건축학부) 교수는 "범어사의 가람배치를 전통적 불교건축양식에 따라 복원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잡고, 한국 사찰의 보편적 건축 양식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 ▲ 천년고찰 범어사가 해방 64년만에 사찰내 조선총독부 표지석과 석탑 울타리 구조물 등 일제 잔재를 걷어내는 청산작업을 13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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