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강남 홍마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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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탤런트 부인 30개월간 56억
뜯긴 사연
신종 금융피라미드
‘폰지 사기(Ponzi scheme)’ 상륙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67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유명 연예인의 부인을 상대로 56억원이라는 거액의 사기를 저지른 40대 여성이 검찰에 구속됐다. 이 사건은 일단 톱스타의 부인이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지만 피해를 당한 기간이 2년이 넘는 데다 피해 액수가 50억원이 넘는 거액이라는 점에서도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 최종원)에 따르면 범인 김모(47)씨는 톱스타의 부인 A씨(30대 후반)로부터 30개월(2006년 5월~2008년 11월) 동안 69차례에 걸쳐 모두 56억645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A씨가 귀신에 홀리지 않은 이상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한 사람에게 엄청난 액수를 빼앗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A씨는 김씨에게 왜 이렇게 황당하게 속아 넘어갔을까?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A씨를 상대로 일종의 폰지 사기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내막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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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 유재일
폰지 사기(Ponzi scheme)란 고수익을 올려주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앞사람의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수법이다. 미국에서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이 650억달러(약 83조원)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6월 벌금 1700억달러에 징역 150년을 선고 받으면서 널리 알려진 범죄수법이다.
김씨가 A씨를 상대로 한 범행도 폰지 사기의 일종이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화장품 수입·판매업체 대표였던 범인 김씨는 2003년 여동생을 통해 우연히 영화배우의 부인이라는 A씨를 소개받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A씨의 남편은 지금처럼 톱스타 반열에 오르기 전이었고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김씨는 연예인의 부인이라는 점에 호기심을 갖고 A씨와 친분을 쌓아나갔다고 한다. 김씨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자 둘은 금세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2004년 3월 두 사람은 처음 돈 거래를 했다. 김씨는 A씨에게 화장품 사업을 확장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만 투자하면 이자도 후하게 쳐주고 금방 갚을게.” A씨는 선뜻 5000만원을 빌려줬다. 이에 김씨는 2년 넘게 월 100만원의 이자를 꼬박꼬박 A씨에게 건넸고, 2006년 7월에는 원금 5000만원을 깨끗하게 갚았다. A씨는 김씨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때쯤부터 A씨의 남편은 누구나 아는 특급 스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김씨는 2006년 8월 돈독한 신뢰를 쌓은 A씨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커피숍으로 불러내 솔깃한 제안을 했다.
“내가 S그룹 오너의 오른팔이자 최고위직 비서인 홍 마담을 잘 알아. 홍 마담이 나를 친동생처럼 아끼거든. 홍 마담은 S그룹을 통해 알게 된 고급 정보로 경기도 양평의 타운하우스, 강원도 평창의 땅에 투자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어. 사실은 내가 너한테 빌린 5000만원도 거기에 투자해 수익을 얻은 거야. 홍 마담을 중심으로 유력 정치인, 재벌 2세 등 거물들이 ‘12인회’라는 투자그룹을 만들었는데 나도 그 멤버 중 한 명이야. 이 언니를 믿고 투자해봐. 매달 투자금의 10%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 줄게.”
김씨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간 A씨는 맨 처음 4000만원을 시작으로 30개월 동안 56억원이 넘는 돈을 보내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폰지 수법을 써서 A씨를 안심시킨다. 30개월 동안 투자 이익금이라면서 한 번에 수천만원을 A씨에게 주기적으로 보내준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가 투자금을 ‘배당’해준 금액은 수십 차례에 걸쳐 모두 28억원에 달한다. A씨가 보내준 돈의 절반 가량이 다시 돌아온 셈이다. A씨는 꼬박꼬박 투자 이익금이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와서 A씨에게 돈을 보내줬다”면서 “아마 중간에 ‘투자 이익금’을 돌려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A씨를 속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마담’과 ‘12인회’도 아무런 실체가 없는 김씨의 거짓말로 드러났다.
A씨의 연예인 남편도 아내의 투자 과정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의심을 못했다고 전해진다. A씨가 김씨에게 돈을 보낼 때는 남편 명의의 계좌에서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행은 2년6개월 만에 꼬리가 잡혔다. 김씨가 점차 투자 이익금을 약속한 날짜에 A씨에게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A씨 부부가 낌새를 눈치채고 김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폰지 사기의 원조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찰스 폰지(1882~1949)다. 그는 1919년 국제쿠폰 사업을 벌인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90일 만에 원금의 1.5배를 돌려주겠다는 폰지의 제안에 미국 전역에서 4만명의 투자자가 몰려들었고 폰지는 무일푼에서 몇 개월 만에 1500만달러의 투자액을 끌어 모은 갑부가 됐다.
그러나 폰지는 실제로 아무런 사업을 벌이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처음 모은 투자액은 자신이 챙긴 후 다음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을 그 다음 투자자의 돈으로 지급하는 일만 되풀이한 것이었다. 일종의 금융피라미드였던 셈이다. 그러다 투자금을 모은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더 이상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자 폰지는 그대로 파산했고 범행은 덜미를 잡혔다.
폰지 사기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워낙 단순한 사기수법이지만 약속한 투자 이익금을 일단 받으면 사기꾼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에 사리분별 있는 사람도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범행기간이 오랜 기간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은 무려 20년 동안 폰지 사기 행각을 계속해 왔으며 저명한 경제학자인 헨리 카우프만도 희생자로 드러나 미국 사회를 놀라게 했다. 특히 폰지 사기는 가까운 사람들을 철저하게 속여 인간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연예인의 부인 A씨도 김씨와 막역한 사이가 됐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메이도프도 어린 시절 친구인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프레드 윌폰 구단주로부터 7억달러를 받았다가 공중에 날렸으며,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노벨상 수상자 엘리 위젤 등과도 같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분을 쌓은 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가 배신했다.
이외에도 폰지 사기가 세상을 들썩인 사례는 적지 않다. 1997년 알바니아에서는 국민의 70%가 연루된 초대형 금융피라미드 사건으로 비화하며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고, 지난 6월에는 재미동포 손모씨와 정모씨가 캘리포니아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8000만달러 규모의 폰지사기를 벌인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소돼 교민 사회가 술렁였다. 일본에서도 지난 2월 침구회사 L&C의 대표 나미 가즈츠키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2265억엔(약 3조4000억원)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돼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다.
지난 6월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들어서만 폰지 사기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25건이 적발돼 지난해(13건)보다 크게 증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폰지 사기가 국경을 넘나들 정도로 스케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