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불에 탄 시신 뒹굴…" 무슨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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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통신 "중국 위구르 유혈시위로 140명 사망"
인명 피해 속출]
신화통신은 6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시 공산당 위원회를 인용해 이번 사태로 140명이 숨졌으며, 828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버스 190대와 택시 10여대를 포함해 261대의 차량이 전소되고, 상가 204곳과 민간주택 14채가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신화통신은 갈수록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소요 사태는 지난달 26일 광둥성의 한 완구공장에서 일어난 한족과 위구르족 종업원 사이의 집단 충돌이 발단이 됐다. 이 공장의 한족 종업원 100여명은 한 한족 여공이 위구르족 청년들에 의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위구르족 종업원을 공격해 위구르족 2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현지 지방정부는 성폭행 사건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지 한국 교민들에 따르면 우루무치의 위구르족 3000여명은 5일 밤 집단 거주지역에서 가까운 인민광장에서 이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항의시위는 밤이 깊어가면서 더 격화돼, 일부 흥분한 위구르족들이 지나가는 버스와 택시에 불을 지르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길을 지나가던 한족이 위구르족이 휘두른 칼에 찔려 사망한 경우도 있었으며 한족의 집과 상가 등도 피습을 당했다고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한 교민사업가는 “아침까지도 불에 탄 버스와 트럭, 시신 등이 도로 곳곳에 나뒹굴었다” “얼다오챠오(二道橋) 등 우루무치 내 위구르족 집단 거주지역 주변은 무장경찰과 장갑자차가 삼엄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국제전화와 인터넷도 두절됐다”고 말했다.
중국 서부의 최변방인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석유와 석탄 등 자원이 풍부해 최근 10여년간 중국의 서부대개발로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부유한 한족과 가난한 위구르인 간의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민족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구소련 해체 이후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신장에도 분리주의 세력이 형성돼 이들은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도시를 돌며 자해테러 등을 감행해왔다. 중국 당국은 이번 사건도 이런 분리주의 세력이 개입해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해외의 위구르족 분리단체들은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중국 공안이 강경 진압하면서 위구르인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위구르인은 중앙아시아 투르크계의 민족으로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중앙아시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 내 인구는 총 987만명으로 이중 941만명이 신장에 살고 있다. 외모에서 한족과 확연히 구별되며 중국어를 아예 모르거나 서툰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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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 유혈충돌 모습 현지 방송 캡처.
[중국 위구르족 어떤 민족인가]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5일 대규모 유혈 시위를 벌인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유목민족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중국 북서부 변경 산악지역에 위치한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집단으로 거주하며 중국의 주류인 한족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중국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은 현재 모두 987만명이며 이중 942만명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살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전체 인구 2천만명의 46%가 위구르족인 셈이다.
위구르족은 생김새부터 황인종인 한족과는 달리 아랍인의 외모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종교나 문화, 언어 등 여러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단결’ 또는 ’연합’의 뜻을 지닌 위구르족은 기원전 3세기경 중국 북서부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부족전쟁을 피해 서쪽으로 옮겨오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위구르족은 돌궐족이나 흉노족과 조상이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흉노족의 왕자 2명이 다툼을 벌이다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 만든 것이 돌궐족과 위구르족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744년 바스밀, 카를룩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투켄산에서 ’위구르제국’을 세우고 100년간 중앙아시아와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된다.
특히 군사력이 뛰어났던 위구르족은 757년 당시 당나라가 안록산의 난으로 위기를 맞게 되자 위구르군을 수도 창안(長安)까지 파견해 당조를 구해주는 등 중국 조정을 돕기도 했다.
위구르족은 점차 유목적 성격을 잃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군사력이 약해져 840년 다른 터키계 민족인 키르기즈족에 의해 멸망한 뒤 아랍, 몽골 등의 통치를 받는다.
위구르족은 1759년부터 1864년까지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42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며 1865년 봉기로 잠시 독립을 했으나 1877년 다시 청나라에 복속됐다.
이들은 중국의 국공내전 등을 틈타 1933∼34년, 1943∼49년 독립국가인 ’동(東)투르키스탄공화국’을 건립하고 민족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1949년 중국의 지배에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은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를 정식 설립하고 위구르족을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완전 흡수했으며 1980년대부터 변경안정화정책에 따라 한족의 대량 이주를 추진했다.
그러나 지금도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무장 분리독립 운동단체인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을 비롯한 각종 단체들이 활동하면서 테러를 기도하는 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 위구르 시위에 비상]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부재중 발생
무장병력 우루무치 장악, 지도부도 예의주시
지난해 3월 티베트(시짱·西藏) 라싸(拉薩)에 이어 이번에는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140명의 사망자를 낸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해 중국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일반 시민들이 벌인 우발적인 시위가 아니라 분리주의자들이 배후에서 치밀하게 계획한 분리 독립을 위한 시도란 점에서 당국의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주요8개국(G8) 확대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을 방문 중인 기간에 터진 일이어서 당국을 더욱 당혹케 하고 있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5일 오후 7시께 3천명 이상의 군중이 우루무치의 인민광장, 해방로 등 도심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140명이 숨지고 828명이 부상했다.
신장자치구 공안국 발표에 따르면 군중은 행인들과 상점, 차량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경찰차량 2대와 190대의 버스 등 261대의 차량을 불태우고 203곳의 상점과 14채의 주택을 파괴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티베트 라싸 사태보다 훨씬 더 큰 인명피해 및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티베트 자치구 정부는 라싸 사태 며칠 뒤 민간인 18명과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민간인이 382명, 경찰관이 241명 등 623명이라고 발표했다.
우루무치 공안 당국은 무장경찰 등 무장병력을 1천여명 투입해 공포탄을 발포하면서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체포됐고 공안당국은 주동자에 대한 색출 작업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위 현장은 차량 출입이 통제되고 무장경찰과 인민해방군 등도 곳곳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현재 우루무치 시내는 계엄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우루무치시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 즉시 통지문을 내고 “현재 일부 시내에 차량 출입 통제를 시행 중이며 개인과 기업은 모두 스스로 사회의 정상적인 질서를 유지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어기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 엄중한 형사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교민들은 현재 인터넷 접속과 발신전화 등이 불가능한 상태인데다 불안감으로 인해 외출도 어렵게 돼 사실상 외부세계와 고립돼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중국은 이번 시위가 위구르족 망명 지도자인 레비야 카디르가 이끄는 세계위구르대표대회가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망명중인 레비야는 위구르족의 분리독립 운동 지도자로서 중국의 위구르족 차별과 탄압을 서방에 폭로하는 대표적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 중 하나다.
이번 사태와 관련, 중국 지도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긴급 비상대책 회의를 열고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책 마련에 주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중국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하는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중앙(CC)TV 등은 이례적으로 사건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중국 당국이 우루무치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소요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며 위구르인 밀집 거주지역과 톈안먼 등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3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발생한 티베트인의 라싸 사태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유혈시위여서 중국 당국은 다른 소수민족으로까지 여파가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중국이 건국 60주년이 되는 10월 1일 대규모 국경절 경축행사를 벌이는 해이기 때문에 중국은 올해 초부터 보안과 통제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우루무치 교민 "준계엄..한국인들 안전"]
무장경찰 배치, 경비 통제 강화..전화.인터넷 불통
대규모 유혈 시위사태가 발생한 중국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는 경찰 병력이 대거 배치돼 준 계엄상태를 방불케 했지만 한국 교민들은 안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중 한국대사관 이영호 총영사는 6일 “우루무치에는 300여명의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한국 교민들의 피해상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신장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는 무역업, 요식업, 자영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교민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루무치 시내에서 한국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한 교민은 이날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유혈시위가 발생한 인민광장, 해방로 등에서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과는 거리가 멀어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우루무치 시내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한 사실에 교민들이 모두 놀라워하면서 걱정하고 있다“면서 ”교민들이 외출을 자제한 채 집과 사무실 등 안전한 곳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전했다.
교민들에 따르면 현재 중국 무장경찰과 민정경찰 등 공안이 인민광장 등 유혈시위가 발생한 곳을 봉쇄해 외부인과 차량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우루무치에 파견된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인민광장 인근의 호텔에 머물고 있다“면서 ”창밖을 보면 경찰 병력과 경찰차량이 광장 곳곳을 에워싸고 행인들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현재 식당과 호텔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터넷 접속이 차단돼 교민들이 정보를 확인하기가 어려우며 착신 전화는 가능하지만 발신 전화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교민들은 전했다.
교민들 일부는 식당에 모여 교민들의 안전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일부 교민들의 경우는 연합뉴스가 연락을 시도했지만 현재 전화선이 불통돼 통화가 잘 연결되지 않았다.
우루무치에서는 5일 저녁 대규모 유혈 시위가 발생, 6일 오후 현재 최소 140명이 숨지고 80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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