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은 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②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③ 김대중(金大中)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④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⑤ 자유언론의 창달, ⑥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⑦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⑧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등이다. 이 선언은 민중항쟁에 의한 급격한 변혁이나 지배층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과는 달리 양자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1985년 2·12총선 이후 야당과 재야세력은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도덕성과 정통성의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였다. 이에 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학생 박종철(朴鍾哲)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달았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26일 전국 37개 도시에서 사상최대 인원인 100여만 명이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력이 마비되자 정부는 한때 군 투입을 검토하였으나 온건론이 우세하여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6·29선언이 발표되었다. 10월 27일 국민투표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 후보 노태우가 36.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발췌: 네이버 지식인
[6.29 민주화 선언은 노태우선언이라고도 합니다.]
1. 배경
당시 대통령 선출은 지금처럼 국민이 선출하는 직선 방식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성과는 거리가 먼 간접 선출 방식이였습니다.
즉 투표결과를 조작해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당시 전두환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대통령이 된 후 다음 대통령으로
노태우를 지목하고 간접선출 방식을 통해 대통령 자리를 이어줄려 했습니다.
2. 원인
하지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였고, 수많은 투쟁과 데모를 통해 민주화를
주장하였습니다. 그 민주화의 방식은 대통령 직선제의 부활이였죠.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 요구가 갈수록 너무나 커지게 되자
노태우는 이대로라면 간접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도
문제가 많겠다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3. 전개
결국 노태우는 6.29 노태우 선언이라 불리는 민주화 선언을 하게 됩니다.
자신은 민주적인 후보로서 당당히 국민들의 선택을 받겠노라고 공언을 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 선거에 나갈수 있도록 감옥에서
풀어줍니다. 이는 민주화 세력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였습니다.
4. 결과
이 6.29 선언으로 당시 대통령 선거가 국민들의 손에 의해 치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영상, 김종필, 김대중 등 민주세력의 후보들은 여권 후보인
노태우 후보를 맞이하여 통합을 하지 못하게 되고 각각 출마를 하게 됩니다.
결국 민주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표는 이들에게 각각 분산되게 되고
이 덕분에 노태우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계속해서 직선제로 치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