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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원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헤리티지 재단에서 열린 출판기념 세미나에는 에드윈 퓰너(Feulner) 이사장이 이 책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존 볼턴(Bolton)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토론자로 나왔다. 유엔 개혁은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국제정치의 오랜 주제다. 또 이 책이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을 직접 겨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헤리티지 재단의 유엔 비판서 출간은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미 언론의 계속되는 반 총장 비판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 총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그는 "반 총장이 세계에서 일을 했으면, 이제 나라를 위해서도 일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당 내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의원은 반 총장의 임기가 2012년 대통령 선거 1년 전인 2011년에 만료되는 것을 염두에 뒀다. 반 총장이 한국 대통령 선거의 풍향계가 되는 충청도 출신이라는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유엔과 반 총장의 역할이 비판을 받고, 한국에서는 정치권의 영입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반 총장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은 반 총장을 5년 단임(單任)으로 끝내게 하려는 다른 국가와 경쟁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재(好材)다. 이미 특정 국가에서는 임기 절반을 넘긴 반 총장을 낙마시키기 위한 전략에 착수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누구보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는 반 총장이다. 유엔과 자신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실적(實績)으로 대응해야 한다. 외국의 여론을 비판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그의 적극적인 활동을 알리고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려야 한다. 아울러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 면담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얀마를 방문, 리더십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사태가 재연돼서도 곤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정치권에서 증대할 가능성이 큰 '반기문 대통령 출마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 승리에 목숨을 거는 한국의 정치권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도록 해야 국제사회에서의 구설수를 피할 수 있다. 반 총장의 2012년 연임(連任) 성공은 개인과 그를 배출한 국가의 영예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의 재임은 한반도에서의 분쟁을 방지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등으로 인한 통일의 기회가 올 때, 남북한은 국제법상 다른 국가라는 논리가 유엔에 횡행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반 총장이 15일부터 개막된 유엔 총회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도록 소리 없는 배려와 지원으로 그를 도와야 할 때다. 그래야 정작 유엔의 힘이 절실히 필요할 때 우리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