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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휠체어 타고 농구하던 여대생, 벌떡 일어나…

쥴라이신부 2009. 9. 9. 11:02

평소엔 걷지만 농구할 땐

 휠체어 타는 그들

 

용인대 농구팀 '유니온'
장애 없는 선수로 구성된 국내 첫 여자 휠체어 농구팀
"스포츠 지도하려면 함께 경기하며 느껴야죠"

"휠체어와 몸이 하나가 돼야 해. 골 밑이 빈다. 밀착 마크!"

지난 2일 경기도 용인대 체육관. 경기용 휠체어에 앉은 여자 선수 7명이 격한 기세로 코트를 누비며 농구공을 주고받았다. 선수들 몸놀림이 둔해진다 싶을 때마다, 선한 얼굴의 이 대학 최승권(崔承權·54) 특수체육교육과 교수가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정신 차려!"

이날 훈련은 포워드 유윤주(22·특수체육교육4년)씨의 그림 같은 중거리 슛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길게 포물선을 그린 공이 림을 깨끗이 통과하자, 함성과 박수가 체육관을 울렸다. "나이스, 용인대!"

최 교수가 훈련 종료를 알렸다. 그때까지 휠체어에 앉아 있던 선수들이 두 다리를 고정한 두툼한 벨트를 풀고 벌떡 일어섰다. 이들은 비장애인들로 구성된 국내 첫 여자 휠체어 농구팀인 '유니온(Union)' 선수들이다. 최 교수가 '내 새끼들'이라고 부르는 애제자들이다.

최 교수는 국내 특수체육 교육학계의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75학번이다. 모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잠실 신천중 체육교사로 근무하다가 1988년 은사의 소개로 삼육재활원 운영과장에 부임하면서 장애인과 인연을 맺었다.

용인대 여학생들로 구성된 휠체어 농구팀‘유니온’선수들이 코트에 모였다. 가운데 평상복을 입은 사람이 특수체육교육과 최승권 교수./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그는 1990년 용인대 부임을 앞두고 영동고속도로에서 15t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온몸에 철심을 박고 반년 동안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 장애인의 고통과 불편을 '절반쯤'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용인대에 부임하자마자 남자 휠체어 농구팀을 만들었다. 당시 모든 종목을 통틀어 비장애인 선수들로 구성된 최초의 장애인 스포츠팀이었다. 지난해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미국 여자 휠체어 농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여성팀도 만들자고 결심했다.

"때마침 고양시에서 여성 장애인들로 구성된 휠체어 농구팀 '레드폭스'를 창단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농구는 상대가 있어야 하니까, 특수교육을 전공한 우리 학생들이 레드폭스의 파트너가 돼주자고 생각했지요."

'사지 멀쩡한' 용인대 특수체육교육과 여학생들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휠체어 농구 훈련에 들어갔다. 최 교수가 "할 수 있겠냐"고 걱정스럽게 묻자, 이들은 시원스럽게 "한번 해보죠" 했다. 남자 휠체어 농구팀에서 주무를 보며 틈틈이 코트에 섰던 졸업반 유윤주·윤지영씨, 2학년 신지혜씨, 신입생 위보은·박진·김보경·윤혜인씨 등이 모였다.

이들은 대당 400만~500만원 하는 수입 휠체어를 새로 구입할 수 없어 남자 선수들 휠체어를 빌려 썼다. 창단 초기엔 변변한 유니폼이 없어 남자 선수들 옷을 빌려 입기도 했다.

지난 6월 안산에서 열린 한·일 장애인 농구대회가 이들의 첫 공식 대회였다. 유니온 선수들은 당시 일본의 장애인팀 규슈 돌핀스에 하프 스코어로 완패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이들은 기죽지 않고 8월 중순 2주 동안 합숙 훈련을 했다. 휠체어 조작, 체력 훈련, 전술 훈련, 개인 슈팅 훈련과 연습경기가 종일 이어졌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선수들은 훈련을 거듭하며 휠체어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출전한 '2009 SK텔레콤배 전국 휠체어 농구대회'에서 고양시 레드폭스와 두 차례 맞붙어 1승1무를 기록했다.

최 교수는 "여성 휠체어 농구는 이제 걸음마 단계"라며 "더 많은 장애인 팀, 비장애인 팀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멀쩡한 두 다리가 있는 사람들이 뭐하러 휠체어 타고 농구를 하냐' 입니다.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장애인에게 스포츠를 지도하려면, 함께 경기를 하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껴야 합니다."

용인대 여자휠체어농구팀 유니온. 이들은 비장애인 여자농구팀이다. 그들은 휠체어 농구를 통해 장애인을 이해하고 소통한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최선을 다한다. 전기병 gib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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