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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항선원이던 1980년 간첩으로 몰려 각각 징역 15년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신귀영(74.왼쪽)씨와 신춘석(72.오른쪽)씨에 대한 재심에서 부산지법 형사6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 연합뉴스
“처절하게 소외된 삶..지난 세월 뭐로 보상받나”
“한국 사회에서 간첩행위는 살인보다 무서운 범죄입니다. 이웃의 따가운 시선은 차치하더라도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1980년 2월 간첩 혐의로 경찰에게 붙잡혀 각각 징역 15년과 10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한 신귀영(74) 씨와 신춘석(72) 씨 등 일가 4명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21일 무죄를 선고하자 이들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법정을 나서면서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훔친 신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1980년 2월 25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무작정 끌고 갔다”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 전기고문, 몽둥이질 등 안당해 본 고문이 없을 정도였는데 이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1995년 6월 만기출소했는데 아직도 후유증으로 악몽을 꾸곤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출소 후에도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고 생계를 위해 조그만 가게라도 열려고 했으나 여러 사람의 방해로 이 또한 쉽지 않았다”며 30년 가까이 계속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되뇌며 몸서리 쳤다.
신 씨와 함께 붙잡혀 9년을 복역한 신춘석 씨도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던 당시 사회적 배경 탓에 법관들도 용기를 낼 수 없어 우리 같은 국민이 고통을 받았다”면서 “그 결과 이웃과 눈조차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소외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모질게 고문했던 사람들이 법정에서 끊임없이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을 보고 화도 났지만, 그 가운데 한 명이 양심선언을 해 법원이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그동안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특히 처음부터 우리 사건을 맡아 사비까지 털어가며 우리를 도와준 문재인 변호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될 지 모르겠다”며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하지 간첩이라는 족쇄 탓에 남편과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는데 이제 족쇄가 풀렸으니 못다 한 일을 해 볼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외항선원이던 신 씨와 당숙 신씨는 1980년 일본 교포에게 돈을 받고 부산 수영비행장과 관련된 국가 기밀을 넘긴 혐의로 경찰에게 붙잡혀 2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서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은 거의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으나 함께 붙잡혀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사촌 여동생의 남편 서성칠씨는 출소를 앞둔 1990년 옥사했다.
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신 씨의 형도 고문 후유증으로 9년 전 숨을 거뒀다.
피해자들은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하급심에서는 받아들여졌지만, 유죄를 뒤집을만한 새로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됐으나 2007년 진실화해 위원회의 재조사로 재심이 이뤄졌다.